獨방송재벌 키르히 그룹 법정관리 신청 : 머독 - 伊총리 인수 경쟁 獨선'상업화'반대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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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자금난에 시달려 온 독일 방송 재벌 키르히 그룹이 8일 주력 기업인 키르히 미디어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키르히 그룹의 붕괴는 전후 독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도산으로 평가된다.

◇원인은 무리한 사업 확장=창업주인 레오 키르히(75)회장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키르히 그룹은 65억유로(약 7조6천억원) 이상의 빚을 졌다. 특히 유료 TV인 프레미어 방송은 그간 40억 유로를 투입, 2백40만명의 회원을 확보했지만 지난해만 10억유로의 적자를 냈다.

키르히의 위기는 독일 최대 신문 재벌인 악셀 슈프링거 그룹이 지난 1월 키르히 그룹의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를 행사, 7억6천만유로를 현금으로 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어 도이체방크가 자금 지원 불가를 공개 선언, 자금난이 심화하면서 키르히는 결국 무너졌다.

◇베를린과 뮌헨의 갈등=이번 사태로 키르히 본사가 있는 뮌헨의 바이에른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 당초 키르히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바이에른 주정부는 키르히가 무너질 경우 이미 22억유로가 물린 주립은행(란데스방크)의 부실로 이어져 기민·기사당 총리 후보인 에드문트 슈토이버 주지사가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막판에 키르히 지원을 포기했다.

이에 대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8일 "이제 와서 키르히 사태를 방관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난했다. 그간 우파 성향의 키르히계 방송에 시달려 온 슈뢰더는 키르히의 회생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지만 선거철인 지금 이로 인한 대량 실업을 방관할 수도 없는 처지다. 특히 얼마 전 건설 회사인 홀츠만이 도산, 키르히의 부도는 슈뢰더에게 최대의 악재가 되고 있다. 때문에 키르히 사태의 책임 문제가 올 9월 총선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 미디어 전쟁=이번 사태를 계기로 키르히에 자본 참여를 하고 있는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미디어세트 그룹은 독일 시장 진출 기회를 노리고 있다. 프레미어의 주식 22%를 보유한 머독은 올 10월 이를 20억유로에 되팔기로 돼 있는 계약을 이용, 키르히를 장악할 속셈이다. 키르히 미디어 주식 4.8%를 소유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상업성 추구로 악명 높은 이들 언론 재벌에 대한 독일 측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 슈뢰더 총리는 최근 "우방의 총리가 자신의 회사를 통해 독일 언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면 큰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독일 내에 마땅한 인수자가 없을 경우 이들의 참여를 배제할 수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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