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지지하면 떳떳이 밝혀라" : 이인제, DJ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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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이인제(李仁濟)후보가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노무현(盧武鉉)후보를 하나로 묶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DJ=노무현''노무현의 정계개편=DJ 신당'으로 몰고 있다. 경선 결과에 대한 기대는 이제 확실히 접은 것 같다.

9일 충북 충주지구당을 방문한 李후보는 "金대통령이 내심 누구를 지지하고 있다면 밝히는 게 떳떳하다"면서 "盧후보를 지지한다면 밝혀라. 나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대놓고 DJ를 겨냥했다. 그는 "권력의 의지가 전기가 흐르듯 경선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당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며 '보이지 않는 손'의 경선 개입을 거듭 비난했다. 제천-단양지구당에서는 더 심한 말도 나왔다.

李후보는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은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을 내세워 상왕(上王)노릇을 하려고 일해재단을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盧전대통령도 박철언(朴哲彦)전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내각제 각서로 YS(金泳三 전 대통령)를 견제하려다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직 대통령은 누가 후보가 되든지 관여해서는 안된다. 현직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뒤 야인으로 돌아가야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金대통령이 盧후보를 앞세워 퇴임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뜻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李후보는 민주당 영남후보의 본선 필패론도 제기했다.

한나라당이 盧후보를 'DJ와 호남이 내세운 꼭두각시'라고 공격할 게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반(反)DJ·반호남의 영남 지역주의가 살아나 민주당의 영남후보로는 이길 수 없다는 논리다.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내 고향 충청도도 민주당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암시가 깔려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李후보를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진 권노갑(權魯甲)전 고문이다. 權전고문은 "나는 안 나선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한다. 權전고문의 측근인 이훈평(李訓平)의원은 "대통령을 욕하고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나서느냐.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 선관위도 과열공방 자제만 요청했을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자칫 李후보에게 또다른 공격의 빌미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충주=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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