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와 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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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같은 말이라도 나라에 따라 대접하는 순서가 달라진다. 네 방위(方位)를 한국이나 일본에선 '동서남북'이라 하지만 중국인들은 '둥난시베이(東南西北)'라고 부른다. 영어는 또 달라서 '북남동서(North, South, East and West)'다.

중세 유럽에선 길을 다닐 때 좌측통행을 했다고 한다. 기사들이 왼쪽 허리에 칼을 찼으므로 우측으로 다니다간 자칫 상대방의 칼과 부딪쳐 시비가 붙을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싸우기도 용이했다. 옛날 일본의 무사들도 같은 이유로 왼쪽으로 다녔다.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으로 많아선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왼쪽(左)보다는 오른쪽(右)이 더 우대받아 왔다. 오른쪽은 '좌우명(座右銘)''오른팔 같은 존재'라고 긍정적으로 쓰인 반면, 왼쪽은 '좌천(左遷)'에서처럼 상대적으로 폄하됐다. 이슬람교와 힌두교에선 오른손은 깨끗하지만 왼손은 부정한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영어단어 '오른손잡이(dextrality)'는 '솜씨좋다(dexterous)'와 통하지만 왼손잡이(sinistrality)는 '불길하다(sinistrous)'는 이미지를 불러 일으킨다.

좌파·우파라는 용어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탄생했다. 사실 그해 7월 14일에 파리 시민 1만여명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을 때 수감자는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던 정신병자 2명, 어음사기범 4명과 근친상간자 등 일곱명 뿐이었다. 어쨌든 혁명은 일사천리로 추진돼 1792년 성립된 국민공회에서는 의장석에서 볼 때 급진파인 자코뱅당이 왼쪽, 온건파인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자코뱅당은 좌파 또는 좌석이 좀 높다는 이유로 산악당(山岳黨)으로 불렸고, 지롱드당은 우파가 됐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이인제 고문이 노무현 고문을 '급진 좌파'라고 칭하더니 그제는 이회창 한나라당 전총재가 현정권과 盧고문을 '좌파적''급진세력'이라 불러 삿대질이 오가고 있다. 한국에 제대로 된 보수·우파가 얼마나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속생각을 알아보자는 주장을 무조건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이상하다. 짜증나는 드잡이는 그만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공방을 벌일 수는 없을까. 새도 좌우 날개로 난다고 했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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