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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유지 원하는 대만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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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만 정치계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하나는 대만 내셔널리즘을 호소해 중국으로부터의 자립을 강화하려는 민진당.대만단결연맹의 그린(녹색) 그룹이다. 또 하나는'중화민국'이라고 하는 종래 체제를 유지해 중국과의 관계 안정화에 역점을 두는 국민당.신민당.신당의 블루(청색) 진영이다. 민진당은 천수이볜(陳水扁)총통, 국민당은 롄잔(連戰)주석, 신민당은 쑹추위(宋楚瑜)주석이 이끌고 있다. 급진적 독립파인 대만단결연맹에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정신적 지주다.

양 진영이 대만 자립화를 둘러싸고 한층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입법원 제6기 위원(임기 4년) 선거가 실시됐다. 결과는 전체 225석 중 그린 진영이 101석, 블루 진영이 114석이다. 천 총통은 패배를 인정했다.

그린 진영은 대만 내셔널리즘과 자립화를 강조하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3월의 총통 선거에서 천 총통은 근소한 차이로 롄잔 주석을 물리쳤다. 중국.대만의 경제적 일체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만의 정치적 주체성을 호소한 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천 총통은 제2기 취임 뒤 '2006년 주민투표로 신헌법 채택, 2008년 시행'이란 자립화의 길을 제시했다. '중화민국'체제와 국명마저 바꿀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군비 증강도 호소했다. 천 총통은 입법원 선거 직전 재외공관.공영기업에 붙어 있는 '중국' '중화민국'등의 명칭을 '대만'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바른 이름(正名)'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천 총통은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까지는 중국이 과격한 행동을 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이에 대해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긴장하고 격노하고 있다. 신헌법에 의해 대만의 국명이 '중화민국'에서 '대만국'이나 '대만공화국'등으로 변경된다면 중국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대만의 독립선언으로 간주해 무력으로라도 저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것이 중국의 최대 정치적 원칙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한다. 대만을 직접 위협하면 세계가 '중국 위협론'을 강하게 느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에 부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대만의 이런 행동을 계속 비판하고 자제를 요구해왔다. 지난 10월 말 베이징을 방문한 파월 미 국무장관은 "대만은 독립 상태가 아니며, 국가 주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대만의 미래에 대해선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래 입장은 '평화적 해결'이었다. 이라크.북한 문제로 바쁜 미국은 천 총통의 언동에 초조해하고 있다.

입법원 선거 1주일 전 나는 어느 일본대표단의 일원으로서 천 총통을 만났다. 천 총통은 해외의 걱정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주민 투표는 대만 독립이 아니다. 중화민국 명칭은 변경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도 대만화의 길을 갈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입법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입법원에서 4분의3 찬성이 있어야 헌법 개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천 총통의 '자립화 급진 노선'에 대한 대만 주민이 응답은 '노'였다. 주민들은 '현상유지'를 선택했다. 중국.미국은 이번 결과에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장기적으로 본다면 대만 주민들의 자립 경향은 온건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 해결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리=오대영 기자

고쿠분 료세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