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진급비리 수사 언급 적절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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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 장성 진급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 육군 수뇌부와 군 검찰에 경고성 언급을 했다. 노 대통령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육군 인사 비리 수사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수사에 반발하는 육본 수뇌부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또 "수사 상황을 공개해 여론의 힘을 빌려 수사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사 상황을 흘려온 군 검찰을 겨냥한 것이다.

그동안 육본과 군 검찰이 벌인 싸움은 군의 위신을 여지없이 떨어뜨렸다. 수사가 시작된 지 약 한 달이 됐지만 진상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인사 실무장교가 만든 진급대상자 명단이 실제 진급자와 일치했는지, 이 장교가 상부의 지시를 받아 공문서를 변조했는지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다. 양측이 모든 의혹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에 군의 생명인 지휘체계는 엉망이 됐다. 심지어 구속된 인사 실무 장교의 동기생들이 변호사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까지 계획할 정도다. 이러다 보니 '저런 군대에 안보를 맡길 수 있나'하는 국민적 불안감도 높아졌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마저 개입하게 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원칙적으론 부적절하다. 어떤 식으로든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 측은 "적법한 수사는 보장되는 게 원칙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 수사를 하라 말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래도 그런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면 국민에겐 수사에 대한 '압력'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 군통수권자라는 지위와 수사 언급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 침체에다 심각한 분열상을 보여 뒤숭숭하다. 이런 판국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군이 이렇게 난맥상을 보여선 안 된다. 군 검찰은 사건의 진상을 빨리 규명하고 육본 측도 수사에 협조할 것이 있으면 적극 협조하라. 군이 이런 식으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