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革 논쟁 : 정책대결인가 … 색깔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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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2위를 다투는 이인제(李仁濟)·노무현(盧武鉉)후보 사이에 보혁(保革)논쟁이 갈수록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자민련도 가세해 보혁 대결은 정치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보혁 대결 구도의 현상과 흐름, 대선과 정치권에 미칠 영향을 짚어보고, 우리 사회와 정치의 건강성을 배양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점검해본다.

편집자

보혁 논쟁은 민주당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인제 고문이 급부상한 노무현 고문의 이념 성향을 문제삼아 반격에 나서면서 경선의 최대 이슈가 됐다.

李고문은 "개혁세력 대 반(反)개혁·수구세력 구도의 정계개편을 추진할 것이고, 이를 위해 기득권(후보)을 양보할 수 있다"는 盧고문의 발언을 물고 늘어졌다. 盧고문이 급진개혁 세력들을 중심으로 정치판을 보혁구도로 새로 짜려 한다고 몰아붙였다.

경선 초기 정통성·정체성 공격에 시달린 李고문의 반격이다. 한때 경선 포기까지 생각했던 李고문이 '경선 참여'쪽으로 선회하면서 격돌은 거세졌다. 보혁 논쟁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의 좌경화를 막겠다""우리당 강령은 중도개혁이지 길거리의 급진개혁이 아니다"며 盧고문의 급진성을 부각했다. 盧고문을 향해선 '사회주의''잘 봐주면 페로니즘'이라고 공격했다. 李고문이 '재벌해체'(1988년),'정당하지 않은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89년)고 한 盧고문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이념논쟁은 절정을 이뤘다.

李고문 측은 "盧고문의 급진성이 부각되고 본선 필패론이 확산될 경우 거품이 꺼질 것"(金允秀특보)이라고 기대하고 있다.'중도개혁세력 대 급진 좌경세력'의 대결구도로 몰아갈 경우 본선 경쟁력을 우려한 당원·대의원들이 '대세론'에 다시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희망이다. 당장의 경선에서의 득표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에 대해 盧고문은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 써먹던 매카시적 수법""당시 주장과 지금 생각은 다르다"고 흥분했지만 정면대응은 피했다.

주말 경선에서도 그는 "치고받기 식으로 보여서 좋을 게 없다"며 뒤로 피했다. "보혁 대결 구도가 굳혀지는 게 유리하지 않다"(盧후보측 참모)는 판단 때문이다.

광주 경선의 결과를 감안할 때 盧후보의 우세가 예상됐던 전북에서 李후보가 선전한 것은 이념논쟁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노무현 돌풍'과 이념공방의 확산은 당 밖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는 "보혁 대결 구도로 가면 나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한나라당의 양당대결 틈새에서 입지가 좁아진 자민련의 입장에선 선거판이 보혁 대결 구도로 짜일 경우 오히려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존립 위기까지 갔던 자민련으로선 '원조 보수'를 내세우면 한나라당과도 차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적지 않게 신경쓰고 있다. 우선은 이회창 대세론을 위협하고 있는 '노무현 돌풍'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다. 盧고문이 후보가 될 경우 한나라당의 주된 기반인 영남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때문에 당내 경선단계이긴 하지만 최대한 자질론·색깔론으로 盧고문의 거품을 뺀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이 연일 "盧고문이 말바꾸기와 궤변으로 검증을 회피하려 해선 안된다""카멜레온식 수법으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잠시"(남경필 대변인)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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