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거풀 벗겨내니 삶은 위태위태하구나 :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펴낸 하성란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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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하성란(35)은 누구인가. 문학 출판사들이 눈독들이고 "마이크로한 묘사가 압권"(문학평론가 김윤식)인 젊은 작가다. 1996년 등단한 뒤 동인문학상(99), 한국일보문학상(2000)을 받았으니 작품 세계도 대외적으로 높이 평가받은 셈이다.

그런데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인 송가을해의 엄마라는 사실에도 주목해 보자. 20일에 한번씩은 급식 당번으로 학교에 가야 하고 틈만 나면 가을해의 동네 친구 4인방과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남편은 "집안일의 10분의 1만 하면서 최소한 3분의 1은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전업작가 부부라는 점은 특색이다. 남편 송민호씨는 지난해 영화 '라이방' 시나리오를 썼다. 딸은 때로 "그런데, 엄마 이제 소설 안 써?"라고 어퍼컷을 날리는 영특한 아이다.

뒷조사 하듯, 왜 작가의 사생활을 캐냐고? 재밌으니까가 아니고 자질구레하지만 탄탄한 일상을 사는 이 작가가 보여주는 생활의 발견이 놀라워서다.

지난 2년간 발표한 11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창작과비평사)는 우리의 지루한 일상이 지반을 다지지 않고 날림으로 지은 집처럼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주고 있다. 자기 삶이 집장수들이 지은 집처럼 부실 덩어리인데도 먹고, 마시고, 놀고만 있네 하는 것 같다.

작은 사건에서 삶의 위기일발을 뽑아내는 능력은 탁월하다. 억대 족집게 과외선생이 따로 없을 정도다. 잃어버린 애완견을 필사적으로 찾던 부부가 개는 찾고 소아마비 아이를 잃어버리고('저 푸른 초원 위에'), 약혼자의 하숙집에서 약혼자의 남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자다 얼떨결에 아버지 모를 아이를 밴다.('기쁘다 구주 오셨네')

심심찮게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을 다룬 단편들도 빼어나다. 특히 햇병아리 같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은 씨랜드 화재사건을 소설화한 '별 모양의 얼룩'이 그렇다. 내시경으로 찍어낸 듯 아이 잃은 엄마의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다. 자식 둔 부모라면 장담컨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것이며 TV뉴스의 영상은 하성란의 문장에 한참 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는 "그 애들이 우리 애랑 같은 나이"였으며 "내 딸도 몇 주 뒤 그런 곳으로 캠프를 갈 예정"이었고 "그 사건 뒤 몇 날 며칠 밤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더불어 "작가는 무당처럼 아픈 사람들을 위무해줘야 하는 존재로, 소설가의 사명을 느끼며 쓴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고 했다. 표제작은 아내를 계속해 죽인다는 내용의 프랑스 전래동화 '푸른수염'에서 따왔다.

"처녀 때도 글을 썼지만 그 때는 프로는 아니었다. 문학은 마음이 편하면 할 수 없다. 독신이었고 마음 편하게 여행 다닐 수 있었다면 글을 못썼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단 7년차의 '프로 주부' 하성란씨는 작가의 길에서 한창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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