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음악팬 녹인 꽃띠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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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1998년 6월 어느날. 서울 청담동의 한 가요기획사 사무실에 여학생 한명이 들어섰다. 갸름한 예쁜 얼굴. 서울 양정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이 소녀는, 오디션을 받기 위해 기획사를 찾은 오빠를 따라나선 길이었다.

서류를 작성중이던 오빠의 뒤에 서있던 이 소녀를 유심히 쳐다보던 누군가가 "노래 한번 불러 볼래?"라고 말했다. 소녀가 부른 노래는 S.E.S.의 발라드곡 '완전한 이유'. 그날 저녁 소녀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는 오디션에서 탈락했고,어렵게 부모를 설득해 가수의 길을 선택한 소녀는 이 기획사의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소녀의 이름은 보아. 기획사는 SM엔터테인먼트, 소녀에게 말을 건 사람은 이수만 이사였다.

지난 20일 일본에서 낸 정규 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로 일본 최고 권위의 오리콘 차트에서 주간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한 보아가 26일 귀국했다. 4월 초 발매할 두번째 한국 정규 앨범 제작 마무리 작업을 위해서다.

"너무 기뻐요. 많은 분이 칭찬해주시니까 더욱 즐겁죠. 한국 가수로서 좋은 기록을 만들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이 많아요.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한국 문화를 잘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리슨 투…'는 지난 13일 오리콘 일일 차트 1위에 오른 뒤 계속 정상권에 머물렀으며 결국 20일자 주간 차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지금까지 약 60만장이 팔렸으며 현재 20만장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라고 한다. 요즘 일본 음반 시장도 한국처럼 침체된 상황이어서 '리슨 투…'의 음반 판매량은 정상급이라고 볼 수 있다.

86년 11월 5일생. 본명은 권보아. 가족은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부모님과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큰오빠, 홍익대 미대에 재학 중인 둘째 오빠가 있다. "둘째 오빠가 오디션에서 떨어진 그 오빠예요. 춤은 각종 댄스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둘째 오빠의 영향을 받았고, 음악은 큰 오빠에게 많이 배우지요."

일본에서 보내온 '승전보'때문인지 요즘 국내 가요 팬들 사이에도 보아와 그녀가 4월 초 출시할 한국 앨범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리슨 투…'의 한국어 버전을 삽입할지, 아니면 일본 앨범과 전혀 다른 앨범으로 만들지 고심 중이에요."

보아는 "처음 일본에 갔을 때 가사에 담겨 있는 의미와 노래의 감성을 결합하는 데 상당히 고생했어요. 반대로 요즘 한국 앨범을 만들면서는 일명 제이 팝이라고 불리는 일본풍과 다른 한국적 감성을 만들어내느라 애를 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보아의 설명이다.

"일본은 재즈풍의 여성적인 춤이 먹히지요. 한국은 힘이 들어가는 힙합적인 춤이 받아들여지고….이번 한국 앨범의 안무에서는 그 두가지를 접목하려고 합니다."

가장 최근 본 영화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대답하는 얼굴에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국어 노래를 하는 한국 가수'로서 일본에서 활약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전략적으로 신중히 연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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