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시대 맞은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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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2 서울 스타일-이 선생님댁의 살림살이를 있는 그대로' 특별전이 첫선을 보이는 날, '한·일 국민교류의 해'를 축하하듯 오사카(大阪)의 하늘은 무척 맑았다.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이 한국의 현대 생활문화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준다는 뜻에서 마련한 이 전시회는 서울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산층 가족 3대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6백평의 널따란 전시공간에 아파트 실내와 가족의 생활용품 3천여점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었다.

마치 가정을 방문한 양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안방이며 부엌·거실에 아이들 방까지 두루 살펴보게끔 꾸민 이 전시는 욕실의 빨래 건조대엔 팬티며 러닝셔츠가 한가롭게 걸려 있기까지 했다. '단순한 관광으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한국인의 생활모습을 피부로 확인하게 한다'는 주최측의 의욕에 걸맞게 가족의 생활 공간은 물론 할머니·아빠·엄마·아이들의 바깥생활을 보여주는 고향·직장·포장마차·시장·학교 생활과 관혼상제와 입학·돌·군대 같은 인간사의 굵직한 마디까지 재현해 놓아 한국인의 생애와 일상을 두루 살피기에 충분했다.

장롱의 문을 열어보곤 켜켜이 쌓여 있는 이부자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냉장고를 열어 무엇이 들어 있나 살피거나 잠시 소파에 앉아 한국 가정 분위기를 즐기는 관람객들로 전시장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밝았다.

박물관측이 "아마도 세계 처음"이라고 자랑했듯 한 가족의 13년여에 걸친 생활사를 송두리째 옮겨놓은 전시방법도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전시품은 절대로 만져서는 안되고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데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5억여원이나 쏟아 부었다는 이 전시장의 물품들을 관람객들이 손으로 만지거나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 더욱 놀라웠다.

그런데 이게 웬 일? '감성 전시'는 이 특별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웬만한 오사카 박물관에는 예외없이 관람객의 갈증을 풀어주는 체험 코너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4백만년 전 처음 형성된 비와호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주제로 한 비와코 박물관은 재현해 놓은 민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직접 관람객이 방에 들어가 당시 생활 분위기를 맛보도록 권유하는가 하면 담수에 사는 생물들을 전시해 놓은 수족관의 체험 코너는 물 속에 손을 넣어 살아 있는 물고기를 만져보게까지 했다. 기원전 3백년부터 6백년간 이어진 집단취락 시대의 생활사를 전시한 야요이 문화박물관은 당시 사용한 나무로 된 커다란 우물을 실감나게 둘러보도록 견학로를 입체적으로 꾸며 놓았다. 또 오사카 역사박물관은 수백~수천년 된 토기나 자기 조각을 만져볼 수 있는 코너가 있어 나 같은 비전문가는 생전 처음으로 옛 토기를 만져보는 '감격'도 맛보았다. 이 역사박물관의 한켠에는 마치 입체 퍼즐처럼 파편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춰 그릇 형태를 완성해 보는 체험 코너도 있어 문화재 복원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체험의 묘미는 세월이 주는 무게와 귀한 물품이라는 가치로 늘 엄숙함을 강요받아오던 박물관을 단숨에 '재미'로 느끼게 만들었다. 유리창 안쪽에 도도하게 자리하고 있는 유물들을 단 한번만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던 나의 오랜 갈증을 자기 파편들로 풀어내는 동안 그 자기를 만들었을 낯모를 선인과 손길을 나누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제 박물관에서 아는 지식을 활용해 유물을 눈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는 아닌 듯하다. 선진국에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시청각 시대의 박물관을 지나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온 몸으로 느끼는 감성의 박물관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용자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면 웹사이트마저 맥을 못추는 세상에서 눈과 머리로만 이해를 요구한대서야 관람객의 발길을 쫓기만 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물이 아니라 관람객 중심으로 박물관을 꾸며 마음으로 다가오는 문화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너무 먼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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