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영합적 길거리 급진개혁" 李, 盧와 이념대결 예고 : 이인제 "경선 계속"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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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선 참여와 불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민주당 이인제(李仁濟)후보가 27일 참여를 선언함으로써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지속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李후보는 기자회견에서 "당의 좌경화를 막고 중도개혁 노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앞으로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盧武鉉)후보를 겨냥한 노선·이념투쟁에 초점을 맞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심지어 盧후보의 노선을 '인기영합적 급진개혁'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길거리의 급진개혁은 우리 당의 강령이 아니다"고 했다. 자신을 중도개혁 노선의 수문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盧후보를 급진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중도개혁이냐,급진개혁이냐'며 정체성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 盧후보의 정계개편 추진 발언을 '음모론'과 연결시켰다.

李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외부의 힘이 작용하는 듯한 상식 밖의 상황이 꼬리를 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외부세력에 의해 자유경선 분위기가 훼손되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호히 배격하겠다"고 강조했다.

음모론은 李후보 자신이 불공정 경선의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당장은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기가 어렵지만 향후 운신을 생각해 이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또 동교동계 구파와도 사실상 결별하는 듯한 얘기를 했다. 李후보는 "그동안 어떤 세력에 의지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진 점을 타파하고 오로지 국민과 당원의 마음속에 뛰어들겠다"고 했다. 이는 권노갑(權魯甲)전 고문으로 대표되는 동교동계 구파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동안 족쇄가 채워져 아무 말도 못했다. 이젠 자유롭게 할 말은 하겠다"는 게 李후보측 입장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해서도 차별화하고 공격하겠다는 의미다. 그가 "당 정풍(整風)운동 때도 내부에서 화살을 날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했다"며 "순리대로 진행되고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경선에 임했다"고 언급한 것도 배신감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李후보가 이날 공언한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가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는 분명해졌다.

그의 경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간판을 내렸다. 앞으로는 1997년 대선 때처럼 버스 한대로 전국을 돌면서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고 한다. 26일 오후 10시 李후보의 서울 자곡동 자택에서 참모들이 "앞으로 경선이 열번 남았는데 그 때마다 참패하는 상황을 견딜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李후보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승부사 이인제'는 민주당 안에 머물면서, 또 비참하게 지는 경선에 계속 참여하면서 승부수를 띄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회는 盧후보가 정계개편에 착수하는 때일 수 있으며,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가 요동하는 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심이 지지해줄 것인지가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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