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무릇 조용히 …' 빛나는 글… 간디 선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건설적인 일이면 무엇이든 조용히 수행하라. 지금 난국이다. 모두가 권력을 원하면 누가 침묵의 봉사를 하겠는가."

20세기 인류에 비폭력.자비.사랑을 가르치는 동시에 몸소 실천했던 간디(1869~1948)가 어느 정치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우주에 비하면 먼지만큼이나 미미한 인간의 육체에 집착하기보다 사랑으로 봉사하는 데 육체를 사용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인류의 스승 간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글을 직접 대해 본 사람은 드물다.

간디가 남긴 글을 발췌한 선집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됐다. '마하뜨마 간디의 도덕.정치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남긴 편지.연설 등을 주제별로 모아 '문명.정치.종교'(상.하), '진리와 비폭력'(상.하), '비폭력 저항과 사회변혁'(상.하) 등 6권으로 출간됐다.

통념과 달리 간디가 남긴 글은 엄청나게 방대하다. 그의 사후 인도 정부가 출판한 '간디전집'은 전체 98권 5만여쪽에 이른다. 이번에 출간된 6권의 선집은 이 중 30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을 추려 번역한 것이다. 그가 남긴 글에는 경전류가 없다. 세상이 갈망하는 것은 경전이 아니라 성실한 행동이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암살당한 1948년까지 샤타그라하(眞理把持) 운동을 돕기 위해 주간지를 발행했고 인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연설을 했으며, 수많은 저명 외국인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를 보면 그의 비폭력.무저항 노선이 치열한 내적 성찰의 산물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성자인가 정치가인가''도덕적 진보와 물질적 진보''정치와 종교''종교적 관용과 평등''인간본성.완전성.낙관주의''도덕.양심.진리' 등 철학의 주요 주제들이 거의 포함돼 있다.

일관된 메시지는 역시 비폭력.자비.사랑. 간디는 동서양 종교에 공통적인 진리도 바로 자비.사랑이며 이는 인간을 넘어 자연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글에는 인도의 종교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시에, 변호사 출신답게 유럽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도 보태졌다. 네루.처칠.타고르.톨스토이.로망 롤랑 등 당대의 지성들과 교유한 편지는 고결한 지적 성찰들로 빼곡하다.

1999년부터 이 선집을 번역한 허우성 교수(경희대.인도철학)는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너무나도 정직한 그의 말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인도 전래의 시 구절, 사회경제 제도와 형용사.부사 등에서 혹시 오역이 있을 수 있다"며 겸손해했다. 허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난무하는 폭력과 대립, 타인의 주장을 용납하지 않는 독단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