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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를 만나다 ② 로버트 그럽스 (2005년 화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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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글=박정식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성적보다 좋아하는 일 찾는 게 먼저

그럽스 교수는 학창시절 열등생에 가까웠다. “낙제를 면하고 다음 학년으로 간신히 올라갈 정도의 성적이었거든요.” 주변 환경도 공부에 도움이 되질 못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먼 거리의 중학교를 힘들게 다녔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높은 부모님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좋아하는 일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과 열정은 제게 본보기가 됐죠.”

당시 아버지는 목수 기술이, 삼촌은 건축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족 중 유일한 대학 졸업자였고 할머니도 학구열이 높았죠. 그렇지만 어린 제가 잘 되기만 바라셨을 뿐, 공부나 진로를 강요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만드는 걸 좋아하는 그를 보고 발명가가 될 거라고 칭찬한 것이 전부였단다. 그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준 부모의 배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플로리다 대학에서 농업과학을 전공하다 유기농을 연구하던 친구와 어울리면서 같은 관심사를 갖게 됐다. 결국 유기농 연구실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수의 제안으로 유기화학을 연구하게 됐다. “그 교수님이 제가 노벨상을 받을 때 가족 외에 스웨덴으로 초청한 유일한 손님이었어요.” 그는 “교수님 덕에 사고력과 탐구력을 키울 수 있었다”며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탐구하도록 북돋워 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 곁을 떠나 더 크게 배우라”는 스승의 도움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컬럼비아대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고교 농업교사를 하려던 저를 연구소로 데리고 와 학자의 길을 걷게 만들어주신 거죠.”

실패에 잘 대처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

그는 연구 과정에서 부딪힌 수많은 문제들을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많이 실패해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먼저 가정을 세워 대입해보고, 실패하면 또 다른 가설을 만들어 조합해보면서 실험과 생각을 계속 반복하는 거죠.” 연속되는 실패에 낙담하지 않고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즐겼다.

그는 “원하는 결과를 못 얻어도 실패에서 배우려는 태도가 더 중요해요. 요즘 똑똑한데 쉽게 좌절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도 바로 실패에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어려운 과학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은 어떤지 묻자 그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과학에 흥미를 붙이기도 전에 공부와 암기를 강요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가 언제든지 진로와 전공을 바꿔 관심사에 전념하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도 대학 이후에야 진로를 찾았다고 했다. 아들은 인류학에서 전기로, 다시 생물학으로, 딸은 화학에서 심리학으로 인문계와 자연계를 넘나들며 진로를 탐색하며 흥미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조양과 이양에게 “남이 좋아하는 걸 하지 말고 내가 신나는 걸 찾아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로버트 그럽스(Robert H. Grubbs)는 …

▶1968년 컬럼비아대 화학 박사
▶1989년 미국과학한림원(NAS) 회원
▶1994년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연구원
▶1988년 미국화학회 유기금속화학상 수상
▶1995년 ACS(American Gem Society) 고분자화학상 수상
▶2000년 화학 분야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 수상
▶2005년 노벨화학상 수상
▶현 캘리포니아공과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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