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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權… 大勢… 용어 사용 신중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주의 정치 관련 기사 중에서 한나라당의 내분(11일자 4면, 12일자 3면)과 민주당 경선의 초반 혼전(11일자 3면, 12일자 4면)을 다룬 기사들의 제목에 '대세'와 '측근'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 것을 보고 기사 표현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중립적 뉘앙스를 가진 '우세'라는 표현 대신 굳이 '대세'라는 선정적 수사를 일상화해 온 관습이 실세나 측근과 같은 사당적 표현을 은근히 즐겨 온 한국 사회의 코드, 즉 권력의 사유화 심리와 연관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헌법상 삼권이 분립된 나라에서, 왕조적 권력을 연상시키는 대권이란 말이 '대통령권'의 준말로 별 생각 없이 통용된다면 권력에 대해 경계하고 감독해야 할 민주정치 의식은 뿌리내리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잠수교 등 일부를 뺀 대부분의 한강다리를 '○○대교'로, 웬만한 길은 모두 '○○대로'로 이름짓는 '대(大)'자 콤플렉스의 척박한 상상력을 비판하고, 집권세력과 저항세력 구별 없이 '원 샷 권력'을 갈구해 온 대권 우선의 풍토를 감시하려는 언론이라면 용어와 수사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정치변화를 위한 시론 시리즈(14~16일자 7면)와 같은 때맞춘 기획들의 의도가 여타 기사에서 엿보이는 수사적 과장과 상쇄되는 일이 없도록 대비하는 전반적 리뷰의 자세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신문 언어의 문화적 파장에 대한 배려를 일상화해야 할 필요성은, 고교 전학 신청과 관련한 서울시 교육청의 위장 전입 조사 방침을 보도하면서 내용에도 없는 '색출'이란 말을 넣어 '고교 전학 위장전입 색출'(2일자 34면)이라고 제목을 뽑음으로써 관료주의적 사고를 여과 없이 전달한 경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색출'의 대상은 자식의 학교를 선택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교육청 앞에서 난민처럼 밤새게 만든, 선착순이라는 희대의 비극을 연출한 단세포적 교육정책이 아닌가?

9·11사태 이후 강화된 미 정부의 공격적 예방 안보관을 구체화한 미 국방부의 '핵 태세 검토(NPR) 보고서' 관련 보도(11일자 1면·11면)는 NPR의 경과와 내용을 잘 요약했다. 그런데 이를 처음(3월 9일) 보도한 LA 타임스도 보고서 전체를 입수한 것이 아니고, 보고서 내용도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요약·인용했을 뿐이다. 즉 문서 전체는 보도 당시에 기밀이었다. 따라서 보도 내용도 원천적으로 편집된 것이라는 점을 밝혔어야 했다. 물론 한반도 유사시 북한에 대한 핵 공격 계획은 당연히 '예상된 충격'이다. 그러나 이 자체가 핵 공격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점을, 즉 이 보고서에 근거해서 미 전략사령부가 구체적 시나리오를 앞으로 마련할 것이라는 점도 짚었어야 했다. 또 생화학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핵을 사용하고, 재래식 무기로 파괴되지 않는 목표물을 파괴할 전술 핵을 개발한다는 계획은 핵무기와 재래무기의 전통적 구별을 허문 '핵무기의 재래무기화'라는 점도 선명히 부각했으면 좋았겠다.

특히 핵무기와 재래무기의 통합, 미사일 방어(MD)와 여타 방어수단의 통합, 사이버 전략과 핵 전략의 통합을 축으로 하는 미국의 새로운 핵 전략 수립이라는 점에서도 2002년 NPR를 주목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든다. 속보(12일자 11면)에서는 7개 당사국의 반응을 좀 더 충실히 다뤘어야 했다. 현대의 세계 커뮤니케이션 질서가 미국 중심인 이상 근본적 한계는 있겠지만, NPR에 대한 미국 내 찬반 의견에 비해 속보에서 다룬 7개국의 반응이 피상적인 것은 외신 취재원을 다변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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