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對 빌라' 저질 정치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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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혹으로 의혹을 덮어가는 여야간 저질 공방이 거듭되고 있다. 여의치 않으면 해묵은 의혹이라도 꺼내듦으로써 진흙탕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서로 상처내기에만 급급하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선 어느 쪽도 분명한 해명이 없다.

이런 공방은 숱한 권력형 비리가 이런저런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본격 재론되고 불똥이 대통령 주변으로 튀면서부터다. 게이트에 연루된 청와대·검찰·국정원 간부 등과 대통령 처조카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아태재단 전 상임이사가 구속되면서 상대의 급소를 정면 겨냥하는 양상이다.

야당이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행각을 문제삼자 여권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두 아들 관련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는 이'식의 보복전은 한번도 예외가 없다. 민주당 김근태 대통령 경선 후보의 불법 정치자금 고백이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검은 자금'시비로 비화하자 여당은 이회창 총재의 호화빌라 사용으로 응수했다. 무슨 돈으로 호화빌라 3개층을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金대통령의 아태재단 건물 신축 관련 의혹과 불법자금 수수 의혹을 꺼내는 등 의혹제기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金대통령 장남 김홍일 의원의 LA빌라 문제에는 李총재 장남 정연씨의 호화빌라 사용이라는 맞불이 붙었다. 金대통령 차남 홍업씨의 금품수수와 3남 홍걸씨의 미국 호화생활 시비가 벌어지자 李총재 차남 수연씨의 미국 내 호화판 유학이 즉각 거론된다.

이런 막가파식 수법은 상대에 대한 흠집내기로 국민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이 자신의 결점·취약점을 가리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비롯한 듯하다. '새 의혹'이 안 떠오르면 재탕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연씨의 병역문제는 1997년 대선 당시 수십번 나온 얘기지만 새로이 시빗거리가 됐고, 97년 이후 두차례나 거론됐던 李총재의 '화성땅'이 신품처럼 다시 등장했다. 한나라당은 화성땅 해명에 그치지 않고 30년도 더 지난 이희호 여사의 '태안땅'을 거명했다.

특히 해명보다는 상대에 대한 새로운 의혹제기가 최선의 방어이자 공격이라는 태도가 의혹의 재탕·삼탕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李총재와 그 측근들은 빌라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설명했다지만 무슨 소린지 분명치가 않다. 청와대는 수지 金 사건의 윤태식씨가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이용호 게이트의 당사자인 李씨가 대통령과 헤드테이블에 앉은 사실을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니 무슨 신뢰가 가겠는가.

진상이 감춰져선 안되겠지만 흙탕물을 끼얹고 보자는 식의 치사한 싸움이 더 이상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여야 모두 제기된 의혹을 어물어물 넘기려 할 게 아니라 밝힐 것은 제대로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흠집내기식 저질 공방은 정치 혐오감만 부채질할 뿐이다. 국민의 체면과 자존심도 좀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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