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미로등 걸작 한자리에 '초현실주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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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초현실주의의 화려한 복권이 시도되고 있다. 현대 예술에 끼친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탄생 초기부터 20세기 후반 내내 그 가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초현실주의의 재평가 작업이 프랑스 파리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퐁피두 센터)은 지난주부터 '초현실주의 혁명'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기획전시를 시작했다. 뉴욕 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 미술관,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등 국립미술관과 전세계 사립미술관,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60명 가까운 작가들의 작품 6백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미술관에 한걸음만 들여놓으면 초현실주의의 뿌리, 다다이즘이 싹텄던 1914년부터 45년 미국으로의 대탈주와 2차 대전 발발로 해체될 때까지의 초현실주의적 소란과 도전·망상들이 어둠의 군대처럼 밀려온다.

조르지오 데 키리코, 마르셀 뒤샹,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이브 탕귀, 알베르토 자코메티, 피카소, 만 레이, 로베르토 마타… 거장들이 회화와 조각·사진·영화 등 전통적 예술 장르를 통해 엮어내는 전통을 파괴한 거울 반대 쪽의 꿈의 세계는 미술관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를 떠나지 않게 한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미로와 마송·에른스트·탕귀의 작품들이다. 우선 1925~27년 미로의 최대 걸작들을 만날 수 있으며 신대륙 발견의 경탄을 표현한 '인디언 마을 풍경(1942)'등 마송의 대표작 6점이 모두 있다. 에른스트는 초기부터 초현실주의 실험이 끝날 때까지를 모두 관통한다.

'새를 먹는 여인(1928)'등 욕망의 포식을 표현한 마그리트의 작품들도 놓칠 수 없다.

또 지나치게 편중된 감이 없지 않지만 '수음(1929)'등 편집광적 세계에 기꺼이 빠져드는 달리의 걸작들도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초현실주의를 창조한 1세대에 한정되고 있다. 그야말로 예술의 한계를 거부하면서 예술을 심미적 속박에서 해방시킨 순교자들만의 것이다. 예술의 앙시앵레짐에 맞서 상상력의 문을 활짝 열어젖힘으로써 예술의 지평을 넓힌 초현실주의를 재평가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가피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의 많은 작가들이 초현실주의의 정신세계를 이어받았으면서도 그것과의 관계를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는 초현실주의를 우선 미술 분야에서만 복권시키려는 것 같다. 회화의 풍요로움에 비해 사진과 영화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특히 몽타주와 사진 부조 등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던 만 레이와 한스 벨머등 사진 작가들은 억울하지만 미술관 한켠에 전시된 40여장의 작품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전시는 필연적으로 문학계에 초현실주의 문학의 유산에 관한 논쟁의 불씨를 던졌다. '초현실'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시인 아폴리네르이며 '초현실주의 선언'을 통해 그러한 운동을 구체화하고 이론화한 사람이 소설가 앙드레 브르통이다.

브르통과 수포·엘뤼아르·아라공 등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자동 기술' 등 기법을 통해 감성의 진화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20세기 문학에 끼친 영향을 가늠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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