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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문화 넘치는 대영박물관·런던 거리 우리 정부·기업은'팔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최근 영국 취재 중 대영박물관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국립 도서관 건물을 개조해 유리지붕을 얹어 새로 만든 그레이트 코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안쪽 건물로 들어섰을 때였다. 건물 1층에는 마치 천장을 들어올릴 듯한 기세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 화려한 복장의 거대한 사무라이 목조인형이 서 있었다. 일본 기획전이 끝나 철거하는 중이었는데도 관광객들은 신기해 마지않는 표정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특별전 형식의 대규모 일본기획전은 대영박물관에서 정례행사처럼 열리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그 건물 3층 한 쪽에 한국관이 있었다. 2000년 11월 개관한 아담한 전시실이다. 삼국시대 토기와 목판활자도 전시하고, 완자무늬 창살에 한옥 사랑방까지 재현하는 등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인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그러나 별로 많지 않았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전시작품을 설명하던 한국관 담당 큐레이터인 제인 포털씨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새롭고 특이한 작품들을 많이 구입해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기획전도 자주 열고 싶은데, 한국 정부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최근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도자기 하나, 그림 한 점이 수십명의 외교관보다 더 유능한 외교사절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녀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계단을 총총걸음으로 내려갔다.

대영박물관을 나와 런던시내 가장 번화한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게 되었다. 그 한복판에 3층짜리 '재팬센터'가 있었다. 지하엔 다쿠앙과 미소된장을 파는 슈퍼마켓이 있고, NHK뉴스가 흘러나오는 1층에서는 각종 서적과 비디오, 깜찍한 팬시용품을 팔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JAL과 ANA 양대 항공사가 주도하는 일본여행 안내부스가 있다. 그 앞을 지나는 런던 시민과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일본정부와 기업은 수십년간 그렇게 엄청난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여 세계인들을 '일본 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얼마전 '명성황후'의 런던 공연 리뷰가 좋지 않았던 것도 혹시 그런 '약발'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은 기자만의 억측일까.

런던=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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