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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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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번 실패 너무 죄송”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사무실에서 12일 만난 이주진원장은 “국민께 너무 죄송하다”며 “나로호 3차 발사는 기필코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 성원에 보답하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로호 3차 발사는 기필코 성공하겠습니다.”

토요일인 12일 오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층 원장실. 남아공 월드컵 한국-그리스전을 앞둔 시점이지만 이주진(58) 원장은 연구원 간부들과 지난 10일 나로호 발사 실패의 후속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선 기자에게 그는 “너무 죄송하다, 실패하고서 무슨 할 말이 있느냐”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다 간신히 입을 뗐다. 여러 달 누적된 피로와 신경성 위경련에 시달린다는 그의 말대로 매우 지쳐 보였다. 원장 재임 1년6개월 동안 나로호 1, 2차 발사와 실패, 통신해양기상 위성의 이달 말 발사 준비, 내년 초 발사할 아리랑 위성 5호 개발 준비 등으로 영일 없는 나날을 보내왔다.

이 원장은 논란을 빚는 나로호 3차 발사 문제에 대해 발사를 기정사실로 간주했다. ‘과연 러시아가 3차 발사에 순순히 협조하겠느냐’는 의문 제기에 대해 “한·러 간 계약서에 나로호가 한 번이라도 임무(과학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일)를 완수하지 못하면 기본 계약인 두 번 발사 이외에 한 번 더 발사하기로 돼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3차 발사를 위해서는 1단 로켓(발사추진체)을 만들어 제공하는 러시아와 협의할 사항이 많아 추가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3차 발사는 발사체와 과학위성 제작 등에 소요되는 시일 등을 감안하면 내년 중 이뤄질 전망이다.

제주도 남쪽 공해상에 떨어진 나로호 잔해의 추가 인양은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놨다. 나로호 1단 로켓이 137초간 비행 도중 지상으로 내려보낸 데이터만으로 공중폭발 원인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면 러시아가 막대한 돈이 드는 해저 인양에 굳이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에 한·러 간 책임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비춰지는 데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러 기술진 모두 나로호 비행 데이터 분석을 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20년 가까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재직하면서 아리랑 위성을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우주기술 역사의 산증인이다.

-나로호 발사 직후 첫 언론 브리핑 때 공중 폭발 사실을 알고도 ‘위성을 찾아보겠다’고 말하는 등 실패 사실을 숨겼다는 지적이 있다.

“외부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 당국자 입장에선 나로호가 비행 중 내려보낸 데이터를 분석한 다음에나 폭발·실종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당시에는 ‘통신 두절’이라는 정보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나로호 1단 로켓의 이상은 불꽃 색을 보면 알 수 있었다고 로켓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불꽃 색은 햇빛이 비추는 각도, 보는 사람의 착시 현상 등 여러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정확한 건 나로호의 비행 데이터다. 그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것이 원인이라고 꼭 집어 말하기 어렵다.”

-한·러 간 책임 공방이 치열하다는데.

“한·러 간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 나로우주센터에 있는 한국인이나 러시아인 과학자 간에 책임을 서로 따지는 분위기는 아직까지 없다. 발사 당사자가 아닌 외부에서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14일 한·러 공동조사위원회(FRB)를 처음 열어 원인 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폭발 원인 규명은 하루 이틀이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지난해 8월 1차 발사 실패의 원인(위성보호 덮개인 페어링의 한쪽이 분리되지 않은 것)을 확실히 찾는 데 반 년가량 걸렸다. 그나마 완벽하게 밝힌 것이 아니라 두어 가지의 개연성을 찾아내는 데 그친 것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우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번 폭발도 원인 규명에 꽤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

-나로호 잔해는 끝까지 인양하나.

“러시아가 주도하는 일이기에 뭐라 답하기 어렵다. 인양하지 않고 비행 데이터만으로 그 원인을 알 수 있다면 굳이 막대한 인양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로호가 떨어진 제주도 남쪽 공해는 수심이 200m가 넘는다. 천안함 침몰 때 수심이 20~40m인 바다에서도 공격 증거물을 찾아내는 데 그토록 힘들었던 것을 보지 않았는가.”

-나로호 제작과 발사장 건설, 과학위성 개발 등에 8000억원 넘게 들었다. 두 번 실패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수치로 말하기 어렵다. 두 번이나 실패해 할 말이 없지만 발사장 건설과 운용, 2단 로켓의 독자 제작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미국·러시아 등은 이런 정도의 기술을 얻는 데만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나로호 실패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우주 기술 노하우를 풍부하게 얻은 데서 위안을 찾고 싶다.”

-왜 거액의 국민 세금을 들여 우주발사체를 쏘고 독자 개발해야 하나. 미·러·일 등 9개 국을 제외하면 모두 인공위성을 다른 나라에 위탁해 쏘지 않나.

“선진국치고 우주 개발에 나서지 않는 나라는 드물다. 국격(國格)을 높이는 데, 또 차세대 우주산업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독자 발사체가 없으면 위급한 때 원하는 위성을 마음대로 쏘아올릴 수 없다.”

-3차 발사와 독자 발사체 개발에 성공하겠다고 하지만 의지만 가지고 되나.

“2차 발사 실패 때 실망감이 컸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국민의 격려가 여전히 많았다. 이런 관심과 지원은 개발 예산만큼이나 큰 힘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고급 두뇌가 많다. 한국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끈기와 강인함이 있는데 우리도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겠다.” 

글·사진=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2018년까지 독자 개발 1.5t 위성도 쏠 수 있어

◆한국형 우주 발사체(KSLV-2)=과학교육기술부 산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올해부터 2018년까지 9년 동안 국산 위성을 쏴 올릴 독자 발사체 개발 계획을 세웠다. 3단 로켓으로 구성돼 1.5t 무게의 인공위성을 지상 700㎞의 우주궤도에 올릴 수 있다. 이번 나로호는 100㎏짜리 위성을 지상 300㎞에 올리는 정도의 성능을 갖췄다. 우리나라 독자 로켓 모델이 완성되면 웬만한 크기와 성능의 위성을 원할 때 전남 고흥의 우리 발사장인 나로우주센터에서 쏴 올릴 수 있다. 강력한 지상 탐사 카메라를 장착하고 이미 우주에서 활동하는 아리랑 위성 2호는 무게가 8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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