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체들 정말 괜찮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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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외국산 수입 철강제품에 8~30%의 관세를 부과하는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발표하자 유럽연합(EU)·중국·일본·한국 등 주요 철강 생산국의 정부·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용납할 수 없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으며, 중국은 "이번 조치로 중국업체가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등 미국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EU 철강업계는 수출에 타격을 받는다고 호소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에 맞서 즉각 보복을 가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이런 세계 철강업계의 격앙된 분위기를 반영한 듯 이날 보도자료를 잇따라 내놓았다. 하지만 내용은 사뭇 달랐다.

'미 철강규제 영향 없음''대미 수출 거의 없기 때문에 전혀 문제 없음'….

대미 수출 비중이 큰 5~6개 철강업체가 내놓은 자료였지만 어디에서도 대미 수출 타격을 우려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업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다른 업체는 타격을 받을지 모르지만 우린 괜찮다"고 주장했다.

그 사이 업계의 대변자격인 한국철강협회는 이번 조치로 지난해 전체 철강 수출의 15.6%(물량기준)에 달했던 대미 수출이 올해는 20%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USA 투데이 등 해외 언론도 "멕시코·캐나다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가들은 관세 부과조치에서 면제된 반면, 한국·중국·일본·러시아·EU 등에 대해서는 직격탄이 가해졌다"고 분석하는 보도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었다.

겉으로만 본다면 정부·철강협회·외국 언론 등이 모두 수출 타격을 걱정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철강업체들만 '별 문제 없다'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사실 관세를 30% 맞으면 수출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미국의 조치로 대부분의 업체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게 돼 있다. 하지만 철강 가격이 회복되고 철강 관련 주가도 오르는 등 침체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를 본다고 솔직히 말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속내를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한 애널리스트는 "이럴 때일수록 회사 상황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대외 신인도나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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