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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실패와 원천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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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의 과학기술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산업 성장의 밑거름이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키고자 국민과 국가는 과학기술 교육에 우선적인 투자를 해 왔고, 그 결과를 격상된 한국의 위상에서 엿볼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기술을 가져와 포장만 살짝 새롭게 한 후 싼 값에 제품을 내다팔던 그런 과학기술 후진국이 더 이상 아니다.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 대통령은 전체 방한 기간인 3일 가운데 거의 하루를 할애해 KAIST와 대전 내 여러 연구단지를 시찰했다. 페레스 대통령은 KAIST에서 수행하고 있는, 소위 당장에는 수익성이 없지만 미래 산업기술계를 주도할 수도 있는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국가경쟁력은 자연발생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한국과 같은 인구 또는 경제 규모가 제한적인 나라에서 세계의 지식경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책과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과거 한국은 선진국의 과학기술발전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자체 기술개발을 지원할 수 없었던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실은 기업이 비싼 로열티를 주고 외국에서 들여온 기술을 응용해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모방학습형 산업발전을 이루게 했다. 그러나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 과학계는 꾸준한 투자를 연구시설과 교육기관에 해 왔다. 그 결과 많은 국내 기업들은 생산기술개발을 통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양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우리가 터득한 게 있다면 독자적인 원천기술개발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나로호 발사의 우여곡절도 ‘한국형 발사체’라는 원천기술이 없는 데 일부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각 대학과 기업에서는 진취적인 도전 정신으로 원천기술에 대한 개발과 투자를 꾸준히 늘려야 한다. 한국에 있는 연구대학이 국가로부터 배정받거나 여러 산업체로부터 지원받는 총 연구비가 미국 MIT의 일개 프로젝트 연구비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가 있다. 열악한 연구개발 환경에 밀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한다면 우리는 많은 제품을 팔고도 상당한 부분의 이윤을 로열티로 지불하는 과거 기술개발 후발주자의 비극을 되풀이할 것이다.

혁신적인 연구과제를 발굴하고, 선택과 집중적인 투자로 원천핵심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한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최고의 담보가 된다. 이를 위해 우리 과학기술계는 교육시스템에 창의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정신을 함양해야 한다. 외국의 저명인사들이 우리나라 과학기술대학에서 추진하는 ‘고위험 고수익’ 프로젝트를 견학하고 간다는 것은 이들이 미래 인류과학계의 발전 방향을 우리 대학에서 봤기 때문이 아닐까.

문광순 한국계면공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