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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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년 후 김대중 정부는 과연 성공적인 정부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현 시점에서 평가한다면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김대중 정부가 처한 상황은 5년 전 김영삼 정부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5년 전 김영삼 정부가 권력형 부정부패 스캔들로 그 때까지 쌓아온 개혁정책의 성과를 다 까먹고 '식물정부'로 추락했듯이 지난 연말부터 터져 나온 각종 게이트로 김대중 정부도 도덕성에 상처를 입고 국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간에서 보면 김대중 정부는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업적을 이룩했다.6·25 이후 최대 국난으로 불렸던 외환금융위기를 극복했고, 4대 구조조정을 통해 개발연대의 경제체제를 해체하고 지속적인 성장체제를 복구했다. 세계적인 정보화 혁명의 흐름을 재빨리 파악하고 선점함으로써 정보화 선도국가로 부상시켰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냈다. 지난해 전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한국이 2.8%의 경제성장을 기록한 것은 경제체질개혁의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물꼬를 틀었다. 역사는 김대중 정부를 세계화, 지식정보화, 탈냉전 시대의 한국의 기틀을 세운 정부로 평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말기에 불거져 나온 권력형 비리 스캔들은 김대중 정부의 역사적 업적을 상쇄하면서 김대중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만들기에 충분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소수파 개혁정권의 성공과 실패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출범했기 때문에 소수파 정권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위협적인 외부의 원군이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조성된 국민적 성원과 지지가 있었다. 환난이라는 국가적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소수파 정권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극복되었고 김대중 정부는 성공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정 초기의 성공이 김대중 정부로 하여금 자신이 소수파 정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하는 착시 현상에 빠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외환금융위기 당시의 국민적 지지는 위기의식이 사라지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더구나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효율성을 높여줄지는 모르나 해당 집단과 계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지는 못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이 지나면 그들은 반대세력으로 돌아갈 개연성이 컸다. 그러므로 소수파 정권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회에서 수의 부족을 메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지지의 외연을 넓혀야하고 다수 반대 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도덕적 우위를 확보해야 했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의 인사는 좁은 인재 풀에 의존했다. 지역적으로, 인적으로 연고가 있는 인사를 등용한 결과 지역적으로는 영남지역의 박탈감을 가중시켜 4·13 총선에서의 패배를 자초했고, 인적으로는 핵심 개혁세력의 지지 폭을 축소시켰다.

또한 축소지향적인 연고인사는 자연스럽게 그들간의 담합과 유착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가 각종 게이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 중에 김대중 정부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권력형 부정비리를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게이트의 조사와 처벌이 조기에 마무리되지 않으면 국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는 힘들 것이다. 또한 총재직 사퇴와 함께 양대 선거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공정하고 중립적인 관리자의 역할만을 하겠다는 金대통령의 약속이 철저히 지켜져야 할 것이다. 선거정치에 개입한다면 야당은 金대통령을 주 공격대상으로 삼아 金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 할 것이고 김대중 정부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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