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 '사기죄'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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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민병철 전 서울중앙병원장은 간과 담도(膽道)수술 기법을 미국에서 처음 도입하는 등 뒤떨어졌던 국내 외과학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대가다.

한평생 수술만 해온 그는 최근 '사기범'이란 딱지를 달았다. 1997년 검찰이 건강보험료 부당청구 및 과잉 진료 등에 의한 사기죄로 서울중앙병원·삼성서울병원·강남성모병원 등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장 10명을 기소한 사건에 대해 최근 1심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민원장에겐 3천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선고 때까지 22번이나 법정에 출석해 진술해야 했으며 해외학회에 참석할 때도 재판계류 중인 피고인 신분이어서 일일이 재판부로부터 출국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 판결은 물론 의료계가 해온 편법적인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날로 발전해가는 첨단치료를 단지 건강보험 항목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환자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고희를 훨씬 넘긴 원로 의사의 이같은 수모는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이번 판결의 여파로 의사들이 부당청구로 판정될 소지가 있는 진료행위에 대해서는 몸을 사리게 되는 현상이 우려된다.

대표적 사례가 수술용 봉합사인 '캣것(cat gut)'이다.

캣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몸 안에서 스스로 녹는다. 일반 봉합사에 비해 비용이 비싸 많은 경우 건강보험의 적용이 되지 않는다. 환자들은 최고의 의술을 원한다.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자기 호주머니에서 기꺼이 돈을 낼 용의가 있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보건 당국이나 형사처벌을 의식해 캣것의 사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의사가 '살인방조죄'판결을 받은 사건도 눈여겨봐야 한다.

머리를 다쳐 뇌수술을 받은 환자의 보호자 요청을 받고 퇴원결정서를 써준 경우다. 집에 도착한 환자는 바로 숨졌다. 담당 의료진이 몇차례 만류했다지만 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퇴원을 허락한 것은 범죄행위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그 후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퇴원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조금이라도 소생 가능성이 있을 경우 의사들이 퇴원결정서에 서명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단지 1%의 소생 확률을 위해 기약없이 수 년 동안 막대한 치료비를 내야한다.

판결이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위법행위는 누구든 처벌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불똥이 튀게 됐다는 사실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하겠다.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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