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국가 과제 <6> 철길을 살리자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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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에선 날마다 3백74대의 자동차가 새로 등장한다. 매일 탄생하는 아기 숫자(3백60명)보다 많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빨리 증가하니 아무리 도로를 놓는다 해도 늘어나는 자동차를 당해낼 도리가 없다. 1990년대 서울의 도로 증가율(연평균 1.5%)은 자동차 증가율(10.3%)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차가 늘면 길을 닦고, 막히면 또 놓는' 식으로 수십년간 펼쳐온 교통정책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증거다.

"도로를 더 닦아봤자 늘어난 자동차로 혼잡만 가중된다. 대안은 대중교통인 철도를 살리는 것뿐"이라고 김형철(경원대 도시공학과)교수는 말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철도망부터 확 늘려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철도 총 길이(3천1백㎞)는 지하철을 빼면 일제시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철도가 닿지 않는 지방 도시들을 연결하는 한편 산업단지와 항만을 잇는 화물용 철도, 레저 수요에 부응하는 관광 철도 등을 갖추려면 최소한 지금의 두배인 6천㎞가 필요하다."(이용상 철도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철도망을 확대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게 매력적인 서비스다. 지금처럼 요금과 서비스를 낮은 수준에 함께 묶어놓아선 입맛 까다로운 승용차 손님을 끌 수 없다.

김광식 성균관대 교수는 "외국처럼 가족여행이나 단체출장 손님을 위한 칸막이차를 만들고 식당차 음식을 비행기 기내식 수준으로 바꾸자. 또 지저분한 대기실에 매점이 고작인 철도역에 은행·우체국·유통센터 등 공공시설을 유치해 도시활동 중심지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대도시권의 전철·지하철도 시설 확충과 서비스 개선이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일산 마두역에서 서울 충무로까지 지하철로 출근하는 이세희(39)씨는 17개 역을 거치는 50분 동안 꼬박 서서 다닌다. 게다가 집~역, 역~회사를 걷는 시간을 합하면 출퇴근길에 각각 한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을 허비한다. "시간이 똑같이 들 바에야 편하게 승용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고 李씨는 말한다.

"구불구불한 현재 노선 외에 직선으로 주요 거점을 잇는 노선을 확충하고, 다양한 급행열차를 운영해 '빠른 철도'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고 이창운 교통개발연구원 철도교통연구실장은 말한다. 선진국 철도들은 모든 열차가 모든 역에 서는 우리 식의 완행 시스템 대신에 많은 역을 건너뛰고 일부만 서는 급행(skip & stop) 시스템을 도입한지 오래다.

그러자면 투자를 해야 한다. 정부도 2020년까지 수도권에서만 최소한 1천㎞의 철도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나 30조원 이상이 소요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러나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해마다 교통혼잡 때문에 지불하는 각종 비용이 19조원(2000년 기준·교통개발연구원 추산)에 달한다. 게다가 사람이든 화물이든 대부분 도로로 실어나르느라 연간 물류비(99년 기준 79조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3%로 미국(7.7%)·일본(8.8%)의 두배나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철도 투자를 더 미뤄선 안된다.

김경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교통연구부장은 "대중교통이 불편하면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승용차를 끌고나와 에너지·환경오염 등 사회적 비용만 증가될 뿐"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철도에 대한 투자를 시급히 확대하고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예리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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