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난다’ 유언비어, 메신저로 35분 만에 전국 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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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6일 오후 11시쯤, 전남 여수에 사는 유모(16·고 1)군은 학원에서 돌아온 뒤 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북한이 전쟁 준비태세를 갖추었다’는 인터넷 기사가 뉴스 검색 순위 1위에 올라 있었다. 유군은 ‘비슷한 내용으로 쪽지를 만들어 보내면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이 전쟁태세를 다 갖추고 쳐들어오는 것은 시간 문제니 남측이 선제공격을 하자고 말했다’는 내용의 쪽지를 작성했다. ‘만 17세 이상의 남자는 다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모든 회사는 업무가 중단되며, 모든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진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게 생겼다. 지금 빨리 퍼뜨려 달라’고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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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23분, 유군은 포털 사이트 메신저에 접속해 있는 친구 15명에게 쪽지를 보냈다. 이 메신저의 ‘전체쪽지’ 기능을 사용하면 한 번에 최대 50명에게 같은 내용의 쪽지를 보낼 수 있다.

쪽지는 메신저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유군에게서 쪽지를 받은 15명 중 한 명인 최모(17)군이 친구에게 쪽지를 전송하는 등 8분 동안 전라도 지역에서만 12명을 거쳤다.

이 쪽지는 서울, 경기도, 인천, 강원도, 충남, 부산 지역 등 전국에 걸쳐 학생들에게 퍼졌다. 메신저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같은 내용을 전송한 사람만 19명을 거친 쪽지는 오후 11시48분 인천의 초등학생 구모(12·여)양에게 전달됐다.

쪽지를 본 구양은 10분 뒤 이 내용을 학생들이 즐겨 접속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한 고교생이 만든 유언비어가 메신저를 통해 ‘광속’으로 퍼지더니 35분 만에 인터넷 카페에 등록된 것이다. 이후 닷새 동안 쪽지는 인터넷 카페 게시판 등에 ‘남한 선제 공격설’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계속 퍼져 나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8일 허위 사실을 최초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유군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구양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을 역추적해 유군을 검거했다. 여수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유군은 평범한 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유군이 “장난으로 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후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이 파악한 결과, ‘남한 선제 공격설’ 쪽지 유포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대부분 초·중·고교생들이다. 경찰 관계자는 “쪽지가 최초 유포된 포털 사이트의 가입자 수십만 명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군 역시 자신이 보낸 쪽지를 6명에게서 다시 받았다. 경찰은 검찰과 협의해 유군의 형사 처벌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한편 북한 관련 시민단체 모임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천안함 사태의 책임을 물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천안함 침몰은 국제사회를 향한 중대한 범죄 행위로 공격 책임자를 찾아내 심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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