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교통문화가 국격을 좌우한다 ③ 음주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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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음주단속을 할 때 음주단속버스(Booze Bus)를 동원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경찰청 차고에서 만난 이 차량 외부에는 ‘DRINK DRIVE it’s a crime(음주운전은 범죄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캠핑카 같은실내는 각종 음주 측정장비가 가득 실려 있었다. [시드니=김상진 기자]

회사 선후배가 술을 마셨다. 선배는 조수석에 앉고, 후배가 운전을 했다. 만취한 후배가 신호등을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선배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두개골이 함몰돼 수술을 받았지만, 뇌의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이때 사고에 대한 선배의 과실은 얼마나 될까.

법원은 선배의 과실이 55%라고 판단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은 “선배 김모씨가 자신보다 어린 사원과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 뒤 서로 취한 상태에서 후배가 운전한 점, 선배인 김씨가 안전띠를 매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며 “이를 고려해 보험사는 김씨가 청구한 돈의 45%만 지급하라”고 밝혔다.

동승자에게 음주운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원 판결이 늘고 있다. “운전자가 취한 사실을 알고도 운전을 권한 동승자의 과실은 70%”라는 판례도 있다. 민사뿐만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형법을 적용해 동승자에게 방조·교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의 동승자는 범죄를 방관하고(방조), 부추긴(교사) 공범이라는 의미다.

교통안전공단의 정관목 교수는 “음주운전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범죄”라며 “멀쩡히 거리를 걷던 사람이 음주운전에 의해 예기치 못한 불행을 당했을 때 이를 고의에 의한 범죄로 보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주운전은 운전자의 단독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공동행위 혹은 합동행위로 보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2007년 도로교통법상에 동승자 처벌법을 명시했다. 일본도 이전에는 한국처럼 형법과 판례에 의존했다. 그러나 2006년 8월 후쿠오카에서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어린이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일본에서는 차를 가지고 온 손님에게 술을 판 업주도 처벌받는다. 업주는 손님이 차를 가져왔는지, 일행 중 적어도 한 명은 술을 마시지 않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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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공범의 범위는 동승자와 업주를 넘어 ‘함께 술을 마신 사람’으로까지 이어진다. 술자리 동석자도 상대가 차를 가지고 있어 술을 먹고 운전할 수 있는데도, 말리지 않고 함께 술을 마셨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본에는 회사원들 사이에 ‘핸들 키퍼(handle keeper)’ 운동이 퍼지고 있다. 술자리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고 운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일본 술집에서는 “내가 핸들 키퍼가 되겠다”고 외치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음주운전은 습관, 치료 병행해야=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최근 5년간 3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자’는 4만3047명에 이른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박사는 “음주운전자의 절반은 두 번 이상 음주운전을 반복한다”며 “선진국은 이를 막기 위해 초보운전자에 대한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고, 음주운전자에 대한 알코올 의존도 측정 등 의학심리 검사를 반드시 실시한다”고 말했다. 초보자 처벌을 강화하는 이유는 습관성 음주운전을 막자는 취지다.

선진국은 자동차보험을 음주운전 처벌에 적극 활용한다. 10명 중 9명은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준법운전자다. 법을 어기는 소수 운전자에게 보험 할증제도를 통해 금전적 처벌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이로 인해 준법운전자의 보험료는 싸진다. 전문가들은 “금전적 손해는 인신을 구속하는 처벌만큼이나 처벌 효과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호주·일본·프랑스·독일=김상진·강인식·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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