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영화 같았던 김정남 취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카오의 신도심 코타이에 있는 38층규모 알티라 호텔 1층 입구. 취재팀은 기가 막혔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로비인가 하는 곳에 서 보니 머리가 멍해졌다.

거대한 건물인데 로비란 게 왜 이렇게 작은가. 지름을 아무리 크게 잡아봐도 20m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곳에 소파가 몇 개 있을 뿐이다. 38층에 메인 로비가 있다는데 매한가지다.
그 좁은 곳을 종업원들이 오가며서 행색이 수상한 취재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무리 봐도 카지노에 돈을 풀러 온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다 카메라까지 들고 있으니 경계의식이 강화된 게 뻔해 보였다.

이렇게 철저하게 도박꾼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곳은 본 적이 없다. 첫째 남의 눈에 잘 안 띄게 로비를 없앴다. 그리고 내부에서 마주칠 일이 없게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가 서는 층수도 달리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빠져 달아나게 만든 구멍이 여럿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호텔도 그렇지만 로비는 감시탑으로의 구실을 전혀 못했다. 카지노 전문 호텔다웠다.

그러니 어디로 빠져나갈지 알 수가 있나. 망연자실해 버린 것이다. 다 잡은 줄 알았는데…. 쥐구멍까지는 몰았는데 막상 알고 보니 구멍 뒤가 완전히 트여 있던 것이다. 머리속이 하얘저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소파에 주저 앉아 버렸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행여나 하고 취재팀은 둘로 나뉘어 1층과 꼭대기 38층 로비에서 죽치는데 종업원들이 계속 "누구를 기다리냐"고 건드린다. "친구를 기다린다""약속이 있다"고 둘러대는데도 계속 "방으로 전화를 걸어 직접 가라"고 계속 채근이다. 눈치를 단단히 챈 모양이다. 하긴 이런 일이 호텔에서 한 두번 벌어지는 게 아닐 터였다.

"제길 방이 어디인지 알아야 가지."
직원의 매서운 눈총을 뭉개 가며 무작정 버틸 수밖에 없었다.호텔직원의 눈빛이 사나워지기 시작했을 때 "맞다.이 친구 여성과 투숙했다지. 그럼 늦은 아침을 하러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10층에 오로라 양식당이 있었다. 급히 튀어올라갔다. 10층! 취재팀은 요즘 "우리의 시계는 10층 이전과 10층 이후"로 나뉘었다고 농담한다. 그냥, 진짜로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만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가 4일 오전 10시30분쯤.

바다가 그림처럼 보이는 창가에 앉은 남녀. 그 사람들이 누군지 즉시 알아본 게 아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남자가 수상한 몸짓을 하고, 여자가 달아나고 있는 것이 머리속에 슬로우 비디오처럼 입력되면서 천천히 그러나 터져나오듯 비상 경보가 울린 것이다.

김정남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 살찐 몸으로 앉아 있었다. 여자를 내보낸 뒤 자기도 나가려 했지만 이미 다 모여버린 취재팀에 막혔다. 그래서 인터뷰는 시작된 것이다.

길어야 겨우 10분. 이미 여러 번 소개했듯이 그는 여유가 있었다. "사진 좀 찍자"고 하니 몇 번 포즈를 취하고 나서는 "됐지요"라고 까지 한다. 초스피드 인터뷰를 억지로 마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머리가 멍해진다.

진짜 내가 김정남 인터뷰 한 게 맞아? 일본 언론만 해왔던 김정남 찾아내기를 우리가 성공한 게 맞나? 실감이 안 났다. 나만 아니었다. 사진 기자도 그랬고 현지인 도우미도 그랬다. 우린 가만히 서로 보다가 "우와" 내지는 "악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50대 '늙은 기자'가 그랬다. 우릴 지키고 섰던 웨이터의 눈이 어리둥절해졌다.

'운도 좋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절대 아니다. 바로 이 쾌감, 10분의 짧은 쾌감을 맛보는 데는 두어 달이 넘는 고생이 깔려 있다. 일에 착수한 뒤 끝날 때까지의 과정은 흥신소 일 같은 것이었다. 좋게 말해 첩보전이다. 취재팀의 한명은 회사 몰래 홍콩으로 와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대충 두달 정도 그랬다. 서울서 "김정남이 프랑스로 망명할 것"이란 첩보를 들은 직후부터다.

문제는 그가 살고 있는 곳과 동선이었다. 파악하기가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작업을 벌였다. 교민은 크게 도움이 안 됐다. 다른 쪽으로 선을 댔다. 현지인들이 현지를 더 잘 알 것이란 생각을 했다. 물론 평소 알고 있던 사람이 도움이 됐고 서울에서 원격 조정이 될 사람을 찾는 것도 큰 일이었다.

전화 번호와 주소부터 확보해야 했다. 전화국이나 전화번호부 등이 좋은 대상이었다.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본 얼티메이텀' 같은 영화…. 영화만 그런 게 아니었다.

유효했다. 비슷한 발음으로 쓰인 이름들이 많은 힌트를 줬다. 마카오라고 왜 흥신소가 없겠는가. 공개할 수 없는 방법으로 관공서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것도 나름대로 하나의 사업 비밀이므로. 아무튼 '들이는 노력과 돈' 없이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실감했다.

그러나 이렇게 잘난 척을 하지만 힘들게 얻은 정보들도 꽝이었다. 취재팀의 포커스는 6월3일이었다. 그 날 김정남이 마카오 공항으로 들어오는 게 확실하다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일 급히 마카오로 왔다.

망을 본다고 우리가 확보한 주소를 중심으로 야간에 뻗치기를 했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며 인근 폐건물로 올라가 사진을 찍고, 누구는 망을 보는 '국제 사건기자' 노릇도 했다. 이윽고 다음날. 벼르고 별렀던 3일 오전 9시 환한 마음으로 마카오 국제공항으로 갔다. 그러나 저녁 9시까지 죽치면서 기다렸지만 완전 헛손질이었다.

닭 쫓던 개보다 더 실망한 마음으로 심란하게 밤을 샌 다음에는 혹시나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으로 김정남의 둘째 부인 이혜경의 집으로 가봤다. 잘 생긴 맏아들만 봤을 뿐 역시 꽝이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각오로 맹렬히 머리를 굴리자 '혹시 오늘 귀국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항 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는데 기대도 안했던 현지 망에서 '알티라 호텔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연락이 왔다. 나머지는 지금까지 중앙sunday와 중앙일보에 쓴 대로다.

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