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 인식은 강경,대처는 유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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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지도부의 냉·온탕 발언에 한반도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지난달 29일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한동안 대북 강경 발언이 쏟아지더니 조건 없는 대화론 등 유화적 발언이 뒤를 잇고 있다.이를 전하는 언론 보도가 춤을 추고 있으니 국민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도대체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강·온 사이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미 지도부의 대북 발언을 집중 조명한다.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대화에 나서지만 과거처럼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거듭되는 강경 발언은 이러한 의지의 명백한 표현이고, 유화적 발언은 대화 의지의 천명이다.

◇북한을 이분법(二分法)으로 다룬다=인식은 강경하게, 그러나 대처는 유연하게 한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다루는 기본 입장이다.'악(惡)'과 '대화'라는 이분법은 언뜻 모순돼 보이지만 미국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와 미사일 발사 유예 약속을 지킨다고 해서 "국민을 굶겨 가면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나라"라는 '악성(惡性)'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부시 행정부의 대북 인식이다. 그렇다고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대북관은 엄격하지만 대처 방식에선 대화를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이라크와 달리 북한에 대해선 검토되는 전쟁 계획이 없다"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선을 그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북한의 군사력 등을 고려할 때 대북 군사행동은 현실성이 없는 선택이라고 미국은 보고 있다.

대화를 통한 북한의 변화 유도라는 기본 전략 아래 다양한 수사(修辭)의 변주곡을 울리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이라크와 왜 다른가=가장 큰 차이는 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한국이라는 미국의 동맹국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는 점이다. 인식은 자유지만 행동에 있어선 동맹국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다.실제로 한국 정부는 부시 발언이 한반도에 불필요한 불안감을 초래했다고 최근 미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는 점에선 이라크와 같지만 그래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던 점을 중시하고 있다. 1994년엔 제네바 핵동결 합의가 이뤄져 양국이 이를 지키고 있다.99년엔 북한 스스로 미사일 시험 발사를 유예했으며 그후 이를 지속하고 있다. 클린턴 정부 말기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하기도 했다.

◇북한이 대결 정책을 계속 추구하면=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핵사찰에 불응하며, 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계속하면 미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미국이 이런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흔적은 없다.

관측통들은 이 경우에도 미국이 급격한 군사행동으로 치닫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단계적 압박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우선 제네바 합의에 규정된 핵사찰의 시기가 왔는데도 북한이 이를 뿌리치면 경수로 공급을 중단하며 합의를 뒤집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파월 장관은 13일 이 점을 시사했다.경수로와 함께 중유 지원도 중단되고 인도적인 식량 지원마저 끊길 수 있다. 북한이 희망하는 테러 지원국 명단 삭제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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