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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국기 과제 <5> 노인에게 일자리를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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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97년 한국마사회 중간 간부로 있다 퇴직한 이석근(65·경기도 고양시)씨는 지난해 6월 시간제 주유원으로 재취업했다.
나름대로 '괜찮은 자리'에 있었던 李씨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성실히 일한 덕분에 그는 최근 월급 1백만원을 받는 정식 사원이 됐다.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손자에게 용돈도 주고 있다.
하지만 李씨처럼 제2의 인생을 꾸리는 노인은 많지 않다. 전체 노인(65세 이상)의 30% 안팎만 일자리를 갖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농민을 빼면 17% 가량에 불과하다.
통계청은 최근 "노인인구가 전체의 7% 이상인 고령화사회(유엔 기준)에서 14%인 고령사회로 가는데 19년이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2~3년 당겨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선진국은 24~1백15년 걸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혜훈 박사는 최근 '인구고령화와 재정의 대응과제' 보고서에서 "다른 변수는 그대로 두고 인구 고령화만을 감안해 향후 경제전망을 분석한 결과, 2000년 8.8%이던 경제성장률이 2005년 4.9%,2010년 4.1%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래픽 참조>
전문가들은 "노인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우리 사회·복지정책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며 "청년실업 등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당장 중장기 노인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줄이되 계속 일하게 하자(임금피크제)=출판사인 교학사는 63세가 넘는 직원 32명의 임금체계를 연봉제 로 바꾸면서 임금을 최고 25% 줄였다. 대신 근무능력이 떨어지지 않으면 매년 계약을 갱신해 계속 근무토록 했다.
이 회사 양철우 대표는 "능력이 문제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앞으로 임금이 정점(피크)에 이르는 나이를 정년 퇴직연령인 58세로 점차 낮추면서 고령자의 경험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국내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반면 선진국에는 이런 근무·임금형태가 널리 퍼져 있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미쓰비시 그룹 등은 정년 퇴직이 가까운 직원이 원하면 자(子)회사 등에 재취업시킨 뒤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 3~5년 단위로 계약하되 임금을 50% 줄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시간제로 바꾸면서 최종 임금의 30% 수준으로 다시 내린다. 이를 통해 대부분 70세 가까이 일한다.
영국의 경우 본인이 희망하면 정년을 5년 가량 늦추되 임금을 낮추고 전일제 또는 시간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취업문을 열어놓고 있다.
◇연령차별금지법 만들자=국내 기업의 입사 제한연령은 평균 31.6세다. 40대 이상은 아예 원서조차 내기 힘든 형편이다. 취업정보 회사인 스카우트의 이은창 팀장은 "신입사원 채용 때 연령을 제한하지 않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부연구위원은 "고령화시대에서는 나이보다는 능력으로 차별하는 형태로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채용·배치·고용 때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미국은 신입사원이나, 20년 근무한 사람이나 같은 일을 하면 임금도 같기 때문에 해고할 때 신입사원을 자르지만 우리는 정반대"라면서 "고령자를 해고 우선순위에 두는 관행을 고치려면 확실한 연봉제로 임금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부문 노인채용 의무화=현행 고령자고용촉진법에는 '중앙부처·지자체·정부투자기관 등 공공부문은 전체 근로자의 3% 이상을 고령자(50세 이상)로 채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강제조항이 아닌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고령자 적합직종(77개)에 근무하는 근로자 3만7천여명 중 36%만이 50세 이상이다.
종로시니어클럽 차승현 실장은 "공원관리 업무를 노인에게 맡기자고 제안해도 몇몇 구청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은 "일본은 일하는 노인의 절반 가량이 공공부문에서 한다"면서 "현행 법의 권고조항을 강제조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버인력뱅크 만들자=고령자 취업 알선창구는 노동부·보건복지부·서울시·중소기업청·경총 등에 흩어져 있다. 이러다보니 구인·구직 정보가 따로따로 관리돼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변재관 박사는 "고령자 관련 구인·구직정보를 한데 모은 인력뱅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강순희 연구위원도 "앞으로 지식정보 관련 경험을 축적한 고령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고급 인력에 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취업 교육 강화=삼성경제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원은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기업 내에 퇴사 후 대비 프로그램을 만들어 재취업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생명 등 일부 기업에서만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구로노인복지관 한동희 팀장은 "정부에서 정한 고령자 취업 적합직종이 현실에 맞지 않아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가 고령퇴직자 재교육을 강화하며▶고령자를 많이 채용하는 기업에 주는 장려금 유형(현재는 세가지)을 다양화하고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신성식·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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