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呪術'서 벗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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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체벌행위가 일어나면 교사의 사과와 처벌을 요구하면서 과외학원에는 엄격한 교육을 요구한다. 스승의 날 담임교사에게 조그만 선물을 전해주는 부조리를 막기 위해 학교는 문을 닫고 엄격히 가르쳐준 학원 선생에게는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을 건넨다.
오래 기다려서 형식적이고 서둘러 끝내는 진료가 싫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충분한 진료와 상담을 받으려는 환자의 요구를 의사가 받아들이면 불법이 된다. 그렇게 할 경우 의사는 본인 부담금을 과다 징수한 것이 되어 행정적 처벌과 함께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 의료가 싫어 외국으로 가는 조기유학과 해외치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어느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교육과 의료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인간자본의 핵심 구성요소로서 인간개발·사회안정·국가발전에 미치는 사회적 외부효과가 커서 시장에만 맡기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과 의료는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균등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사회에 팽배하다. 그리고 교육평등권과 국민건강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요한 교육정책과 의료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평등정책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자립형학교·기여입학제·민간보험은 기대효과가 크더라도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지속되는 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학생들은 지적능력이나 학업성취에 관계없이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해야 한다. 또 모든 환자들은 보험진료비 심사기준에 따라 일률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는 마치 체격이 다른 학생들에게 똑같은 규격의 교복을 입게 하고 평등이 실현됐다고 만족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같은 것은 같게, 같지 않은 것은 같지 않게'라는 다양성이 인정될 때만 실질적 평등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정부는 공공부문을 통해 교육과 의료 평등을 실현하기보다는 모든 학교를 공·사의 구분 없이 공교육기관화 했고 의료기관 또한 건강보험 요양취급기관으로 강제 지정해 공공의료기관처럼 만들어서 온갖 규제를 통해 평등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에는 실제로 사적 자치가 인정되는 사립학교나 민간의료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설립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한 민간인만이 있을 뿐이다. 그 결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부족한 교육재정과 보험재정으로 사립학교와 민간의료기관의 운영까지 정부가 떠맡을 수밖에 없게 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자원배분 방식으로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유학생 자녀를 위해 보조교사까지 배정하는 선진국 공립학교의 차별화된 배려를 흉내내기도 어려운 것이다.
결국 한국의 교육과 의료현실은 획일적 규제에 따라 정해진 교육과 규격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틀에 박힌 서비스가 되었다. 교육자와 의료인들의 자율성은 크게 제약되는 가운데 교육과 의료의 질은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에 만족하지 않는 국민들은 학원과 같은 지하교육이나 조기유학 또는 해외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능한 교사는 학원으로 직장을 옮기고 새내기 의사는 보험적용을 받지 않는 전문과목으로 몰린다. 획일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무리한 정책에 교육·의료 종사자뿐 아니라 민간공급자도, 국민들도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평등권적 기본권 만큼 자유권적 기본권도 소중하다. 획일적인 학교교육과 사회보험만으로는 국민도, 교육자도, 의료인도 자율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학생도, 환자도 필요한 서비스가 다르고 요구도 다양하다. 국민도, 학교도, 의사도 자신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처럼 공적체계와 사적체계가 공존해 협력·보완하는 복층 구조가 우리의 좌표가 돼야 한다. 서비스의 수월성은 사적체계의 경쟁을 통해, 그리고 평등실현은 공적체계를 통해 추구해야 한다. 획일적 평등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교육과 의료서비스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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