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제2부 薔薇戰爭 제1장 序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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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주로 당나라 시인 두목이 쓴 『번천문집』에 나오는 찬사(贊辭)를 인용한 김부식이지만 그 역시 『삼국사기』에서 장보고와 정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보고와 정년은 모두 신라사람이나 그들의 고향과 부조(父祖)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싸움을 잘하였는데, 정년은 바다 밑으로 들어가 50리를 걸어가면서도 물을 내뿜지 아니하였다. 그 용맹과 씩씩함을 비교해보면 장보고가 정년에 좀 미치지 못하였으나 정년이 장보고를 형으로 불렀다. 장보고는 연령으로, 정년은 기예로 항상 맞서 서로 지지 아니하였다. 두 사람이 모두 당에 가서 무령군 소장이 되어 말을 타고 창을 쓰는데 감히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장보고와 정년의 사이를 당나라의 시인 두목은 '항상 사이가 좋지 못하여 서로 지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김부식 역시 '장보고는 연령으로 정년은 기예로 항상 맞서 서로 지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함으로써 마치 라이벌의 관계처럼 두 사람의 우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앞뒤 정황으로 보아 틀린 말이다.
장보고와 정년은 같은 고향에서 자라나 함께 중국으로 들어간 친밀한 관계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장보고가 정년보다 나이가 많아 정년이 장보고를 '형님'이라고 불렀던 것은 분명하지만 '무예는 정년이 위여서 항상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는 기록 역시 불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장보고의 원 이름은 궁복(弓福)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장보고가 중국에 들어가서 군인으로 활동할 때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칭성(稱姓)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당나라 최대의 성인 '장(張)'을 빌려오고 복(福)을 음절에 따라서 '보고'의 두 자로 나누어 개명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장보고는 궁(弓), 즉 활에 능한 무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활은 예부터 동이족,즉 신라인들의 무기였고, 창이나 칼은 중국의 무기였으므로 아마도 중국의 무령군에서는 활을 잘 쏘는 장보고보다 말을 타고 창을 잘 쓰는 기병술에 능한 정년이 훨씬 돋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서로 '사이가 나빠서 지려하지 않았다'는 두목의 표현은 다정한 형과 아우였던 장보고와 정년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애증(愛憎)관계를 과장한 표현일 뿐인 것이다.
장보고와 정년은 평생 동안 함께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던 결의형제였다. 장보고가 있는 곳에 항상 정년이 있었으며, 정년이 있는 곳에 항상 장보고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의형제가 아니라 일심동체의 한 몸이었던 것이다.
장보고가 이처럼 성공하여 라이샤워의 표현대로 '거대한 상업제국의 제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아우 정년의 도움 때문이며, 정년 역시 어린 나이에 무령군 군중소장으로 출세할 수 있었던 것도 형 장보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오히려 두 사람의 신의에 대해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찬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의(仁義)의 마음이 잡정(雜情)과 함께 심어져 있어 잡정이 승하면 인의가 멸하고, 인의가 승하면 잡정이 사라지는 것이다. 저 두 사람은 인의의 마음이 이미 승하였고, 여기에 다시 명견(明見)이 바탕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그뿐인가.
그로부터 2년 뒤.
아우 정년을 맞아들여 서슴없이 인재로 등용하였던 장보고의 인의에 대해 당나라의 시인 두목은 다음과 같이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옛말에 이르기를 '나라에 한사람의 인물이라도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저 나라를 망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망할 때를 당하여 어진 사람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로 능히 어진 사람을 쓴다면 반드시 한 사람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이 말은 오늘을 사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정치가들에게 외치는 역사의 사자후인 것이다. 마땅히 교훈삼아 명심할 일이다.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어진 사람을 쓰지 않기 때문이며, 어진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어진 사람을 발견할 수 없는 밝은 눈(明見)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김부식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능히 어진 사람을 쓴다면 반드시 한 사람만으로도 족할 것이다(苟能用之 一人足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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