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의 티는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흠집은 손쓸 수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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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호 08면

다른 무술처럼 도(道)를 향해 길을 나설 때, 기초는 역시 자세부터 바로잡는 일이다. 흩어진 심신의 수습에 네 부문이 있다. 몸가짐, 말하기의 태도, 넘침의 제어, 그리고 정신 수렴이 그것이다.

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 율곡의 성학집요 <9> 수렴(收斂)-퍼질러진 몸과 마음부터 수습하라

1. 구용(九容), 아홉 가지 기본 자세
“발은 무겁게 딛고, 손은 공손하게 둔다. 눈은 단정히 뜨고, 입은 함부로 열지 않는다. 말소리는 조용히 뱉고, 머리는 꼿꼿이 두며, 호흡은 차분히 한다. 선 자세는 흩트리지 말고, 표정은 엄정을 갖춘다.”
나이가 들어야 철이 드는가. 이즈음 자유란 이 근엄과 격식을 연습한 이후에야 이와 더불어 자라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구용(九容)의 훈련은 자신을 가다듬는 동시에 남을 존중하는 연습이다.

사람들은 다시 물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중요하지, 꼭 그렇게 ‘몸의 자세(容貌)’를 다잡고, ‘말의 기세(詞氣)’까지 연습을 해야 하느냐고. 유교는 확신한다. 몸은 마음의 표현이고, 몸과 마음은 이원화되지 않는다. “쩍벌남(箕踞)의 자세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기는 어렵지 않은가.”

제자의 머리가 약간 기울어있자 선생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머리는 꼿꼿이!” 제자는 “이 꾸지람을 들은 이래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도 곧게 다잡으려 애썼다”고 술회했다.

이런 지침도 있다. 벽에 그림이나 글자가 있으면 고개를 앞으로 빼거나 눈동자를 굴려서는 안 된다. “앉을 때는 자세를 흩트리지 마라. 굳이 보아야 한다면 일어나 글자 앞에 서서 보라.”

다음은 말하기 연습. 율곡은 『시경』을 인용했다. “옥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흠집은 손쓸 수 없다. 생각 없이 말하지 말고 구차하게 떠들지 마라. 내 혀를 붙들어 줄 사람이 없으니 함부로 내뱉지 않도록 유의하자.”

어느 대학 여학생의 거친 말, 막가는 욕설이 인터넷을 달구는 지금 이 훈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군주의 말은 더욱 무겁고 무섭다. “실로 뱉으면 새끼줄로 뻗어가고, 새끼줄로 읊으면 동아줄로 파급된다.” 지도자의 말은 정책적 득실에만 관계되지 않고 백성들의 사기를 좌우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영욕을 가르고’ ‘천지를 격동시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2. 감각의 제어
어째 너무 근엄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이 모두는 ‘사물의 직접적 영향력을 제어하기(不爲事物所勝)’ 위한 고심의 전략이다. 여기가 첫걸음이다. 유교뿐만 아니라 노장, 불교, 아니 동서양의 정신적 전통들이 공히 채택하고 있는 기초 수련임을 기억하자. 불교의 비유를 빌리면 화살이 천 개가 날아와 꽂히는 이 몸의 전쟁에서 정신의 독립과 자발성을 지켜내자면 익숙한 습관부터 에포케(epoche), 괄호 치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몸의 자세를 가다듬고 ‘혀를 붙들어 두면’ 마음의 불순물 또한 줄어든다. 율곡은 『예기』의 한 절을 인용하고 있다. “오만이 줄어들고, 충동이 사라지며, 작은 성취에 우쭐하지 않게 되고, 육신의 즐거움에 탐닉하지 않게 된다(敖不可長, 欲不可從, 縱志不可滿, 樂不可極).” 이 모든 불순물들은 ‘나의 밖’에서 온 것들이다. 이들을 제거해야 비로소 ‘나 자신’과 대면할 길이 열린다.

3. 정신 수렴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망각하고 살아왔다. “이 방심(放心)을 수습(收拾)하지 않으면, 공부고 실천이고 중심이 없이 지리멸렬해진다. 이는 흡사 집에 주인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문 앞도 쓸고 사무도 정돈할 주인이 없으면 그곳은 다만 황폐한 건물일 뿐이다.”

그 주인을 혼란(昏亂), 즉 어둠과 산란으로부터 건져내야 한다. 놀라워라, 그 오랜 망각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은 “어디 멀리 가 있지 않다. 아차 하는 순간 그것은 여기 있으니 힘들여 찾을 물건이 아닌 것이다. 주시와 대면을 통해 그것은 여기 존재한다. 이 정신의 수렴(收斂)이 제자리에 서서, 허다한 타자적 흔적에 물들지 않으면, 점차 물욕은 줄어들고 자연이 자리 잡게 된다(所謂放心者, 不是走作向別處去, 瞬目閒便不見, <7E94>覺得便又在面前, 不是苦難收拾. 且去提<6495>, 便見得. 若收斂, 都在義理上安頓, 無許多胡思亂想, 則久久自於物欲上輕, 於義理上重).”

이 준비 없이 곧바로 책을 집어서는 안 된다. 율곡은 이렇게 충고한다. “방심을 수습하는 것, 이것은 학문의 기초입니다. 옛 사람들이 밥 먹고 말을 할 때가 되면 ‘행동에 어그러짐 없게, 사려가 규율을 벗어나지 않게’라고 가르쳤는데 이는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타고난 양심(良心)을 기르고 내적 덕성을 존중하는 방도였습니다. 지식의 탐구와 확장도 이 토대 위에서라야 탄력을 받게 됩니다. 요즘은 어려서 이 공부를 하지 않고 곧바로 지식을 탐구하고 인격을 수양하겠다고 나서니 마음속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동요되며, 행동거지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 노력도 하다가 말다가 하니 제대도 성취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옛 선배들은 정좌(靜坐)부터 가르쳤고, 아울러 구용(九容)으로 지신(持身)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배우는 자(學者)들이 최초로 힘쓸 바입니다.”

이 훈련을 무어라고 부를까. 율곡이 ‘수렴(收斂)장’이라 이름 한 것은 심신의 수습에 유의한 명명이다. 인간됨의 기초훈련이라는 뜻에서 소학(小學)이라 하고, 이를 통해 자신 속의 에너지가 안정되고 성숙된다는 뜻에서 함양(涵養)이라 부른다. 경(敬)이란 자기와의 대면이라는 뜻인데, 이 자기 의식의 끈은 지금의 심신 수습은 물론, 나중 지식의 추구와 구체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느 때나 유지되어야 할 알파요 오메가의 중심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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