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동북아 패권의 말발굽소리 '재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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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고구려·백제·신라 삼국만 가지고는 당시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수·당의 군사들이 혹한으로 얼어 죽던 요동 벌판과 백제의 원형질이 남아 있는 일본을 아우르지 않고는 역사의 재현은 불완전할 뿐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씨는 이같은 발상을 기초로 새로운 서술방식의 역사서를 냈다.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를 주축으로 고구려와 대항하고 백제·신라와 결합을 하던 중국땅의 수·당, 멸망하는 백제에 원군을 지원한 왜까지 합쳐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치사를 복원해 낸 것이다.
이 다섯나라의 유기적 관계를 해부하지 않고는 신라의 삼국 통일의 의미나 중국 왕조와 힘 겨루기를 하던 고구려의 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작업은 간단할 수 없을 것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등 한국 사료, 『수서』『당서』 등 중국 것과 『일본서기』까지 연구하고,직접 현지 답사의 발품을 보탰다. 전작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웅진닷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에서 선보인 소설적 구성방식을 『오국사기』에서 한걸음 더 내디딘 것이다.
수 문제가 보낸 사신에게 치욕을 당한 고구려 영양왕은 당장의 분노를 삭이고 바로 다음해 군사를 정비해 수를 선제공격했다.
사신에게 수그리고 들어가는 영양왕, 왕의 변모를 보고 세력 키우기를 꿈꾸는 고구려 귀족들, 이 귀족들을 제압하려는 목적도 포함된 수나라를 향한 공격 등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다.
공격을 당한 수나라도 마찬가지다. 선제공격한 고구려를 응징하지 않으면 다른 이민족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중화관을 바탕으로 한 중국과 독자적인 천하관을 지닌 고구려는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수의 오만은 스스로를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끌고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장면 장면에서 저자의 서사력은 힘을 발휘한다. 영양왕과 문제, 모두가 집권과 영토 확장의 당위성을 찾는 데 고심하는 살아있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몹시 사랑한 딸 고타소가 백제의 침공으로 자결하자 '끈질긴 의지'를 가지고 통일을 이뤄낸 김춘추도 아버지의 얼굴로 인간미를 드러내고 있다. 629년 낭비성 전투 이후 김유신에 대한 『삼국사기』 기록이 약 20년간 공백인 것은 김춘추·김유신 간의 냉각기일 수 있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책은 역사 인물에 약간의 숨결만 불어넣는 데서 멈추었다. 저자가 "97%가 사실(史實)이고 3%가 상상력, 그러나 그 3%도 역사적 개연성이 있는 상상"이라고 밝히듯 그의 창작은 유연한 전개를 위해 연결고리로 사용될 뿐 두드러지지 않는다.
무수한 인물이 나오는 드라마 형식을 취하면서도 표지 어느 곳에 '소설'이란 문구가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굳이 따지자면 '역사 평설'로 장르를 구분하고 책 곳곳에 자료 사진과 도록을 마련해 자료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그러나 역사 평설의 대표격이라 할 만한 시오노 나나미와는 비슷하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살을 보태기 위해 사실을 끌어다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저자는 박제화된 연구실 속의 사실들을 밖으로 끌어낸 작업을 벌였으니 시오노와는 출발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홍수현 기자

|Note 이덕일씨는 SBS-TV의 인기 드라마 '여인천하'를 두고 지난해 9월 본지에 평을 실은 적 있다. 당시 "허무한 상상으로 뒤틀지 않아도 역사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란 사실을 왜 모르는가"라고 말했다. 저자는 『오국사기』로 자신의 말을 입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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