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부재' 지도자 책임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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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킬러가 없다. 킬러 좀 찾아주세요"를 외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절규가 가슴을 후비는 한 주였다.
골 결정력 부족은 한국 축구의 고질병. 코스타리카와의 골드컵 준결승전에서 한국팀은 20개의 슛을 날렸으나 그나마 골문쪽으로 간 것은 일곱개. 문전 앞 찬스 때마다 한국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은 '삽질'(슈팅한 볼이 어이없이 뜰 경우 네티즌들이 즐겨하는 말) 하기에 바빴다.
과거 필자가 선수생활을 할 때 주어진 결정적 찬스에서 득점을 하지못하면 발목을 돌렸다. 발목이 덜 풀렸거나 맨땅의 상태를 탓하는 변명의 표현이었다. 요즘 선수들은 같은 상황에서 잔디가 팰 정도로 땅을 차거나 머리를 긁적거린다. 아니면 얼굴을 쥐어짜거나 부끄럽다는 표현으로 얼굴을 감싸쥔다.
필자가 식당에서 만난 어떤 팬은 "축구선수들은 밥만 먹으면 볼을 차는데 골을 그렇게 못 넣습니까"라며 따지듯 묻기도 했다.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15년 이상 공을 다룬 한국의 축구 선수들은 왜 골을 쉽게 넣지 못할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한마디로 한국의 전통적인 축구 문화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독일·잉글랜드·프랑스 등 전통적인 축구 강국이 몰려있는 유럽에서는 일반인에게 볼 하나 주고 축구를 하라고 하면 대부분 골문 앞에 모여 슈팅을 한다. 또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월드컵 단골 우승국가들이 있는 남미에서는 똑같은 상황에서 볼뺏기 놀이를 한다. 반면 한국인은 둥그렇게 원을 그려 볼을 하늘로 차올리며 즐거워한다. 이 문화적 차이와 민족성이 실제 축구경기에서도 나타난다.
남미의 축구선수들과 클럽들은 훈련의 상당 시간을 슈팅에 할애한다. '축구는 골넣기 경쟁'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축구의 문화는 '축구는 잘 뛰어야 승리한다'는 주장을 앞세운다.
이 문화는 연습 때 몸풀고 운동장을 숨가쁘게 돌아야 직성이 풀리고 이도 모자라 훈련 막판에 또 운동장을 다람쥐처럼 10바퀴, 20바퀴 뛴다.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선착순까지 한다. 선착순에 뒤지는 선수가 감독 눈밖에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잘 뛰어야 좋은 선수로 대접받게 된다. 이런 잘못된 훈련은 정작 가장 신경을 예민하게 가동해야 할 슈팅과 전술훈련 때 전력을 다하지 않게 하고 에너지를 남겨 마지막 마라톤 선수처럼 잘 뛰기 위해 힘을 비축해 놓는다. 이는 결국 골 결정력 부족의 '중병'으로 나타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한국 축구에 절실한 때다. 그 중심에는 분명 깨인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토양을 바꾸는 것은 히딩크가 아니라 바로 풀뿌리 축구를 일구고 있는 현재의 지도자들이다.

<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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