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사람] Look at CEO!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2001년 7월26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 김병주 국민.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장은 합병은행장으로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당시의 금융계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계 대주주들이 김정태를 선택했어." 미국 주식시장에 주택은행을 상장시켰고, "월급은 단 1원만 받겠다"고 말하는 등 화제를 뿌렸던 그에게 미국 월스트리트가 주목한 것이다.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그가 통합은행장에 선출됨으로써 증시에 신조어 하나가 등장했다. '최고경영자(CEO) 주가'란 말이다.

외국인들 "걸어다니는 기업 가치"… 주가 몰고다녀

◆CEO에 따라 주가가 춤춘다=기업환경이 급변하면서 CEO의 의사결정 능력과 자질이 기업의 성쇠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때론 CEO의 말한마디는 주가를 춤추게 한다.지난 1999년 7월19일, 미국 휼렛패커드(HP)는 CEO로 루슨트테크놀로지 사장인 칼리 피오리나를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HP CEO 경쟁률은 무려 800대 1이나 됐다. HP의 류 플랫 전 회장은 "피오리나는 변화하는 HP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밝혔다.미국 증권시장은 HP와 루슨트테크놀로지에 희비교차로 응답했다. 이날 오후 HP 주가는 2달러 68센트나 올랐다. 반면 루슨트테크놀로지 주가는 1달러 87센트나 떨어졌다. "HP는 적합한 사람을 골랐으나 루슨트테크놀로지는 유능한 경영인을 잃었다"는 증시의 반응 때문이었다.

투자의 귀재 워렛 버핏은 CEO를 보고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만든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더웨이는 코카콜라.아메리칸익스프레스.질레트 등의 지분을 상당량 갖고 있다. 버크셔의 투자 신조는 'CEO를 보고 하라'다.

IBM의 루 거스너 사례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80년대 들어서도 IBM은 대형 컴퓨터 사업에만 매달렸다.불행하게도 IBM은 컴퓨터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퍼스널 컴퓨터 혁명'을 간과했다.결국 92년말 회사의 현금은 거의 바닥이 났다. 이듬해에는 해체위기까지 맞았다. 이때 CEO로 영입된 인물이 루 거스너. 그는 수익성없는 자산부터 팔아치웠다. 심지어 IBM설립자인 토마스 왓슨 1세가 1937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그림 350점도 팔아치웠다. 소비자의 소리에도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의 CEO 취임 2년째 IBM은 판매량이 30% 늘었다. 주가도 치솟았다. 그 때 시장은 거스너를 "IBM의 주력 기종인 메인 프레임(대용량 고속컴퓨터)처럼 만들어진 사람""으로 묘사했다.

◆총수들의 CEO관=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요즘 CEO의 우수한 능력과 자질이 더 요구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전천후 CEO를 강조한다. '종합예술가'로서의 CEO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경우 경영과 기술을 아는 '엔지니어 CEO'들이 대거 중용되고 있다. LG 구본무 회장은 "훌륭한 CEO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 CEO는 미래를 내다보고 경영을 잘 할 수 있는 CEO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SK 최태원 회장은 인내사(人乃社)론(사람=회사)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기업에 있어서 사람은 시작이자 마지막"이라며 CEO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산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분명하고 긍정적 사고로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인재상을 찾고 있다"는 말로 CEO 선택의 기준을 제시했다.포스코의 이구택 회장과 KT의 이용경 사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변화와 혁신이 불가피하다"며 항상 기업혁신을 강조하는 경영자로 꼽힌다. 그러나 CEO는 외부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기업을 올바르게 이끌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씨티그룹의 CEO 샌포드 웨일의 경우 2000년 비즈니스위크지로부터 '최고의 경영자'로 선정됐으나 2년 뒤엔 '최악의 CEO'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민훈 연구원은 "CEO는 외부 평가에 연연해하지 말고 실적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