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평화 사업의 경제적 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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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는 물고기보다 낚싯대가 먼저라는 유식한 설교에 꽤나 지쳤던지, 테레사 수녀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낚시할 힘이나마 있는 사람에게 통하는 얘기지요." 물고기냐 낚싯대냐(fish or fishing rod)의 논쟁은 자칫 경제학자들의 소일거리로 들리지만, 현실에서도 제법 유용하게 쓰일 수가 있다. 예컨대 북한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물고기냐 낚싯대냐는 식의 질문으로 말이다.

*** 4년간 對北지원액 4천억

먼저 도우려는 쪽의 사정이다. 본지는 '업그레이드 코리아'특집의 하나로 정부 예산의 1%를 북한 지원에 쓰자는 주장을 폈었다. 과감한 제의에 박수를 보낸다는 의견에서 빨갱이 신문이냐는 야유까지 독자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중앙정부 예산의 1%라면 올해의 경우 1조원 남짓하다. 부실기업 하나를 지원하는 데에 간단히 수조원이 들어가고, 부실은행 하나를 매각하면서 간단히 수십조원을 쏟아 붓는 마당에 동족의 곤란을 돕는 일에 1조원이 그리 과중한 부담은 아니다.

북한의 소득이 1천달러일 때는 우리가 보태줘야 하지만, 1만달러로 오르면 거기서 얻을 것이 생긴다. 그때의 1조원은 선심이 아니라 장기 투자가 된다.

그 1%에 많다 적다의 논란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국민의 관심은 오히려 주느냐 마느냐는 근본 문제에 있는 듯하다. 지원에 앞서 명분과 절차를 뚜렷이 하라는 뜻이리라. 이 점을 바로 읽어야 한다. 정부가 실수한 것은 지원 방침이나 규모가 아니라 대국민 설득 부족이었다. 예의 '퍼주기' 시비는 여기서 터져나왔다.

현정권이 들어선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식량과 비료 위주의 대북 지원 규모는 2천4백억원에 불과했다. 솔직히 퍼준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퍼준 듯이 시비가 벌어지는 광경에 북한으로서는 사뭇 황당한 기분일지 모르겠다. 행여 대통령의 방북과 노벨평화상 수상을 앞두고 상당히 퍼줄 듯이 신호를 보내고도 아직 지키지 않는다면 그들 나름으로 배신의 감정까지 느낄지 모를 일이다.

도움을 바라는 쪽도 문제가 있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으로서 대단한 투자가 필요하지도 않고, 자본주의 문물로 오염될(?) 위험도 없는 사업이다.

유람선 임대와 부두 건설까지 남한이 비용을 댔고, 내용도 자고 먹고 걷는 그야말로 수학여행 수준이어서 관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견학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여지껏 계속된 것은 분단으로 갈린 상대 체제에 대한 호기심과 그 땅이라도 한번 밟아보려는 이산가족의 비원 때문이었다.

이제 그 약효가 다하면서 사업이 문을 닫게 생겼다. 반공 단체가 방해하거나 정부 배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익성이라는 경제원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매듭은 북한이 풀어야 한다. 육로 개방이든, 특구 지정이든, 다른 무엇이든 남한 관광객의 돈을 낚시질할 유인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 주의할 일이 있다. 현대아산의 금강산 사업을 정부가 대신하려던 발상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수익성을 제치고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겠다는 말인데, 그것은 이미 실패한 사업에 대해 다시 한번 실패하겠다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당초 현대에 사업 독점의 특혜를 주었고, 관광공사로 하여금 미납금을 대신 갚아주게도 했으나 결국 6천억원의 손해가 나고 말았다.

민간의 손실을 정부가 떠맡는 선례는 장차 대북사업에 나설 남한 기업은 물론 북한 당국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 정부가 경비까지 대주며 시키려는 '억지 춘향이 관광'은 사실상 대북사업 아닌 대남사업(!)이며, 또 그런 땜질로 얼마나 버티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 금강산 관광 ‘낚시’뿐일까

제힘으로 걸을 수 없다면 길을 바꾸는 것이 사업의 경제적 귀결이다. 정부가 선전하는 '평화사업'으로서의 금강산 관광은 훌륭히 그 역사적 임무를 끝냈다. 필요하다면 뒷날 새 계약으로 재개할 수도 있고, 금강산 아닌 다른 사업을 개발할 수도 있다.

막말로 금강산 못가서 어디 덧나는 것도 아니고, 관광이 남북 교섭에 절대적 관문도 아니다. 식량 자급능력을 길러주든, 발전소를 세우든, 공단을 만들든 한층 실속있는 일을 찾는다면 정부 예산의 1%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아까울 턱이 없다. 그리고 그런 지원이야말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낚는 낚싯대가 될 것이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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