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쿵제의 십면(十面)매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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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준결승 1국>
○·쿵제 9단 ●·구리 9단

제 16 보

제16보(174~186)=174로 살려낸 것은 당연하다. 흑이 175부터 일직선으로 돌파해 나오는 것은 예정된 수순. 바야흐로 당대 바둑계에서 힘으로는 대적할 자가 없다는 구리 9단의 마지막 항전이 시작됐다. 179는 가슴을 환히 열어 약점을 드러낸 꼴이지만 흑엔 이 수 외엔 없다. ‘참고도’ 흑1로 그냥 나오는 것이 행마의 법도이긴 하지만 이건 백2로 끝장이다. 유탄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에선 법도 상식도 없다.

쿵제 9단의 180이 좋은 수. 난투극 속에서도 쿵제의 포위망은 의연해 미친 듯 요동치는 판을 묵직하게 제압하는 느낌이다. 확실히 최근의 쿵제는 달라졌다. 자신감이 꽉 찬 쿵제는 구리와의 기세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구리는 역부족을 절감하면서도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한다. 사력을 다해 181부터 돌파해 나가는 구리의 모습에서 문득 그 옛날의 항우가 떠오른다. 한신의 십면매복에 걸려든 뒤 필마단기로 포위망을 뚫던 항우….

참고도

186으로 뻗은 상황에서 백은 3수다. 흑은 A로 끊기면 연단수. 따라서 흑이 A로 잇는 것은 필연인데 초읽기에 몰린 구리는 촌음을 아껴 수를 보고 또 본다. 과연 흑은 지금의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난다면 역전도 가능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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