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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규탄 쇄도 … 안보리 “즉각 조사를” 의장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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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팔레스타인 구호선박에 타고 있던 한 활동가가 지난달 31일 배에 오른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갑판 밖으로 집어던지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가 촬영·공개한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구호선단 공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물론, 러시아·중국까지 한목소리로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후속 구호선단의 가자지구 접근도 막겠다”고 밝혀 또 다른 충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자국 선박이 공격당한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1일 이번 사건을 “대학살”로 규정하며 “국제법과 인류의 양심, 세계 평화에 대한 공격”이라고 맹비난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남미 순방 도중 이번 사건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했다.

이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 온 돈에서 회담을 한 러시아·유럽연합(EU) 정상들도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공격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이사회 상임의장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대해 놀라움과 함께 비난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밤 긴급 모임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2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즉각적이고 공정하며, 신뢰할 수 있고 투명한 조사”를 요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 대해 “구호선박에 타고 있던 구호 활동가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해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배 안에 있던 흉기라며 새총·나무방망이·쇠파이프·칼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이 촬영·공개한 동영상엔 구호 활동가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갑판 밖으로 떠미는 모습이 찍혀 있다.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외무장관은 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전화 통화 때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잣대에 유감을 표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맹국인 이스라엘 비판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미국에도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선 1일 미국 대사관 밖에서 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범죄를 중단시켜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군은 1일 가자지구에 로켓포 2발을 쏴 팔레스타인 민병대원 3명이 사망했다.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 대원들이 1일 레바논 남부의 한 난민캠프에서 터키 국기를 흔들며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이고 있다. DFLP는 팔레스타인 해방전선(PLO)의 과격분파 가운데 하나다. [알리하시소 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 “가자지구 국경 개방”=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으로 몇 안 되는 중동 내 우군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집트는 1일 가자지구에 인도적 구호품을 전할 수 있도록 라파의 국경 통과소를 개방했다. 이곳은 이스라엘을 거치지 않고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지상 접근로다. 그간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에 협력해 라파 국경을 막아 왔다. 환자 수송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월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구호 선박 공격을 강하게 비난한 뒤 국경 개방을 선언했다.

중동 평화의 균형추 역할을 하던 터키가 이스라엘과 등을 돌리게 된 것도 큰 문제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지만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며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터키는 이스라엘에서 무기를 수입했고, 이스라엘 관광객은 터키 관광산업의 주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총격사건 이후 터키는 완전히 ‘반(反) 이스라엘’로 돌아섰다. 터키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한 데 이어 예정돼 있던 이스라엘군과의 합동 군사훈련도 취소했다. 터키 곳곳에선 이스라엘 규탄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충형·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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