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펀드내 부실채권 평가 주먹구구…소액투자자 덤터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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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왜 우리가 가입한 펀드 수익률이 그렇게 떨어졌나. 다른 곳(투신운용사)은 가만히 있는데 당신 회사는 현대상선 전환사채(CB)를 손실처리했는가."

이달 초 D투신운용은 고객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 회사가 만기 때까지 상환이 안된 현대상선CB의 60%를 손실로 처리, 펀드수익률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투신사들은 똑같은 현대상선 CB에 손실률을 이 보다 낮게 적용하거나 손실처리를 아예 미뤘다.

투신운용사들이 부실채권 평가를 제각각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한 투신운용사가 똑같은 회사채의 손실률을 펀드별로 다르게 적용하기도 한다.

◇ 들쭉날쭉한 손실처리=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대상 기업인 새한 회사채의 경우 지난해 9월 말 현재까지 조흥투신운용은 4.9%만 손실로 처리했다.

같은 채권을 한일투신운용은 15%, 한화투신운용은 20%가 손실이 난 것으로 계산했다. 같은 회사가 발행한 채권에 대한 손실률이 최고 3배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대한투신운용은 원리금 상환을 제때 못했던 현대건설 회사채를 부실우려만 있다고 분류, 손해가 없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만약 현대건설 채권의 원리금 상환이 안되면 나중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덤터기를 쓰게 된다.

◇ 왜 다른가=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르면 부도가 발생한 채권은 50%이상, 구조조정촉진법이나 워크아웃 적용기업 채권은 20%이상 상각하도록 돼 있다.

투신운용사들은 이 기준에 따라 사별로 '유가증권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부실채권 상각률을 결정한다.

한 투신운용사의 평가위원은 "손실률을 제대로 다 반영하면 펀드수익률이 한꺼번에 5~10%포인트씩 떨어져 고객들이 대거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며 수익률 하락을 우려해 상각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금융기관이나 기업과 같은 고객들의 요청으로 상각률을 깎아주기도 한다. H투신운용 채권운용팀 관계자는 "기관이 상각을 덜 해달라고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며 "펀드별로 같은 채권에 대한 상각률이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각 전에 미리 큰 손에게 돈을 빼주는 일도 있다. 지난해 K투신사 수익증권에 25억원을 투자한 한 중소기업은 자신이 가입한 펀드에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 회사채만 남아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정상적인 채권들은 미리 팔아 다른 기관들의 환매에 응해줬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현재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 개선책은=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기업의 청산가치.생존가치 등을 따져 채권별로 각사가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평가조정위원회에 외부전문가들을 영입해 채권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 운용사들이 이를 기준으로 일정한 범위 안에서 부실채권 가치를 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송상훈.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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