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프간서 이번엔 마약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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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미국이 제2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돌입했다.'마약과의 전쟁'이다.

미군은 탈레반 정권 붕괴라는 1차적 전쟁목표를 달성했지만 미 마약청(DEA) 관계자들은 오히려 새로운 고민거리를 떠안게 됐다.

탈레반 집권 말기 시행된 강력한 마약 단속정책으로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생산과 수출이 크게 줄었으나 힘없는 과도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마약이 창궐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은 3천6백56t(미국 집계.유엔집계는 3천2백76t)의 마약을 생산, 전세계 마약 공급량의 72%를 차지하는 제1의 마약수출국이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의 강력한 마약 재배 금지조치로 지난해에는 1백85t으로 생산량이 격감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정책이 유가인상을 불러오듯 탈레반 정권의 마약 생산 금지로 마약값은 폭등했다.

탈레반 정권이 물러나고 중앙 통제력이 약한 과도정부가 들어서자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너도나도 마약 재배와 수출에 뛰어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마약은 이란 자히단과 타지키스탄 두샨베 등을 거쳐 대부분 미국과 유럽으로 흘러들어간다.

이를 막기 위해 미 마약청과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의 비밀 마약창고를 열심히 뒤지고 있지만 난관에 봉착해 있다. 비밀창고가 있을 법한 곳은 여전히 친 탈레반 세력이 장악하고 있어 수색작전이 쉽지 않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생산한 마약을 모두 사들이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국제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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