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소인배를 물리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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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재 나라의 형세가 결딴이 나서 기상이 참담해졌으니 세상에 보기 드문 훌륭한 인재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부지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옛 관습만 지키는 구태의연한 신하들과 관례대로 강론할 뿐 한가지 폐단도 고치지 못하고, 한가지 기발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면서 한 시대의 선비들을 경시하여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버리게 하고 있습니다.

*** 400년전 栗谷의 상소문

이러고서도 변방의 화근이 진정되고 백성의 마음이 안정되길 기대한다면, 이는 뒷걸음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 민족의 사표, 문성공(文成公) 이율곡(李栗谷)선생의 말씀이다. 천하의 인재들을 배척하고 낡아빠진 권신들에 의해 나라가 망쳐지는 꼴을 보다못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에 쓰여 있다.4백여년 전의 가르침이 어쩌면 지금에도 똑떨어지게 맞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국정운영의 잘못을 지적하면 귀기울이기는커녕 개혁 반대세력이라고 몰아붙인 후 결국 한 것이라곤 국가의 중추기관까지 조직적으로 연계된 부정과 부패뿐이었다. 구조조정이니 개혁이니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직장에서 내쫓아 길거리에 나앉게 하고 젊은이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집권세력으로서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

집권당의 뜻 있는 주요 인사까지 지적했듯이 지금의 환란은 '권력의 사유화'와 '인사의 실패'가 초래한 재앙이다.

이 정부가 출범할 때 부디 전 정권의 오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제대로 된 개혁정책을 펴고 '망사(亡事)가 된 인사'의 전철을 밟지 말 것을 많은 사람이 청했음에도 결국 그보다 더한 실패로 아까운 4년 세월만 허비하고 이제 정권 말년을 맞고 말았다.

지금과 같이 인사와 정책의 실패로 나라의 근본이 무너진 마당에 개각을 한들 무슨 뾰쪽한 수가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정부는 국민에게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정을 전면 쇄신하고 제대로 된 사람들로 각료들과 대통령 비서진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무너진 나라를 조금이라도 바로 세우고, 개혁의 의지는 있었으나 방법상 실패한 정책을 다시 추슬러 그나마 살릴 것은 살리고 잘못된 것은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그러자면 해당 분야마다 경륜과 능력의 면에서 최고의 인재를 찾아 배치해야 한다. 오랜 관료 경험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신중하고 업무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등용해야 하고, 경제에서는 실물경제에 밝은 인사로 하여금 이 난국을 수습하게 해야 한다. 법을 다스리는 자리에는 누가 봐도 강직하고 올바르다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 인재는 구하면 있는 것이므로 주위의 소인 잡배들의 참언(讒言)을 들을 일이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소인의 모습은 동일하다.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자, 능력이 없으면서 나서는 자, 권력자의 위세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인사권자를 현혹하는 자, 아는 것 없이 목청높이는 자, 자진해 권력의 주구로 나서는 자, 출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 온갖 변명으로 자리에 연연하는 자, 자기의 허물을 감추려고 남을 모략하는 자 등등. 실력도 없이 권력주변에 얼쩡대거나 반짝 아이디어로 권력에 접근하는 교수들 역시 소인에 불과하다.

이런 소인은 나라와 국민에게도 해가 되거니와 결국에는 인사권자도 배신한다. 인간의 역사가 반복해 실증해보여온 사실이다.

*** 최소한 성의라도 보여야

국가는 어느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것이 아니다. 국가는 국리민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요, 공익을 창출하는 메커니즘이다. 인사권 역시 인사권자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공의와 공론에 합당하게 적재를 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선거내각'이니 '수성(守城)내각'이니 하는 것도 모사꾼들의 하책에 불과하다. 오로지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대도로 나아가면 지연.혈연.학연 등을 초월해 인재를 구할 수 있다고 본다. 천하에 인재는 많다. 구하는 사람이 보지 못해 구하지 못할 뿐이다.

나라 일에는 소인물용(小人勿用)이라 했거늘, 특히 항룡유회(亢龍有悔)의 국면에서 소인을 등용하는 것은 매우 위태롭다. 주역이 가르치는 이치다. 정권 말년이나마 권력의 주위를 혁파하고 국정을 전면 쇄신해 한번쯤은 큰 정치와 감동의 정치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鄭宗燮(서울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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