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화가들 통해 본 근대 미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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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畵傳)
최열 지음, 청년사, 456쪽, 2만4000원

최열(48·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씨는 우리 미술동네에서 바지런한 미술사가로 꼽힌다. 특히 한국근대미술을 파고드는 사랑과 힘이 유별나서 저서인『한국근대미술의 역사』로 제2회 한국미술저작상을 받았다. 그는 미술 공부의 목적을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둔다. 긴 세월 화가들을 찾아 헤맨 까닭도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가 새로 펴낸 『화전(畵傳)』은 화가전기(畵家傳記) 또는 화가열전(畵家列傳)의 줄임말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근대 200년에 활동한 우리 화가 28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개인의 전기를 모아 역사를 구성하는 기전체 미술사인 셈이다. ‘19세기 묵장의 영수’ 조희룡(1789~1866)으로부터 시작해 ‘격정의 시대정신’ 이응노(1904~89)로 끝난다. 18세기의 문인화가 이인상이 말했듯 ‘조급한 마음으로 먹을 갈지 말고, 번거로운 말로 글씨를 쓰지 말아라’라는 가르침을 따라 꼭 10년의 세월을 바친 결실이다.

최씨는‘화전 감상을 위하여’라 붙인 들어가는 글에서 독자들에게 손짓한다. “‘그림자 속 그림자를 그린다’는 말로 그의 예술을 그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터이다.” 19세기 철학자 최한기가 “기(氣)야말로 비록 유형의 사물이지만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물 속에서 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한 그 경지를 이 책을 쓴 마음으로 들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 속 그림자를 그리는’ ‘물 속에서 물을 그리는’일에 도전해 온 화가를 만나는 그는 기(氣)를 아는 사람이다.

책 출간과 함께 전해진 반가운 소식 하나. 그가 일하는 서울 평창동 가나포럼스페이스(02-720-1020)에서 10~15일『화전』에 등장하는 김수철·전기·홍세섭·채용신·정종녀·김주경·유영국·김환기·박생광·이쾌대 등 28명 화가의 작품전을 열어 독서와 원작 감상을 아우를 수 있게 됐다. 최씨를 아끼는 화상들이 나서 눈 깜짝할 새 전시 하나가 뚝딱 태어났다니 아름다움을 나누는 일이 또한 그림같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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