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40여년 무감독시험 학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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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의 양정여고 2학년 1반 교실. 학생들이 기말시험을 본 직후 자체적으로 모여 시험 과정을 평가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급우 모두가 양심을 지킨 것이 기쁩니다." "하지만 시험을 빨리 마친 친구들이 복도에 나가 떠들어서 시험에 방해가 됐습니다."

학생들은 시험 도중 부정행위가 없었던 점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앞으로 고칠 점도 제안했다.

1946년 개교한 이 학교는 57년부터 48년째 감독 없이 시험을 보게 하고 있다. 시험을 칠 때는 한 교실에 1, 2, 3년 학생이 모두 들어가 학년별로 서로 다른 줄에 앉는다. 교사는 시험 시작 종이 울리기 직전에 시험지를 나눠준 뒤 나갔다가 시험 종료 직전에 돌아와 답안지를 거둬간다. 시험과목 담당 선생님이 학생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 각 교실을 한바퀴 돌 뿐이다.

권영택 교감은 "건학 이념인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고 양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무감독 시험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부정 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0점 처리하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규정이 교칙에 있지만 실제 부정행위가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감독 시험제를 시행하는 학교는 이곳만은 아니다. 인천시 제물포고도 그중 하나다. 학생들은 시험이 끝난 뒤 17개 항목의 설문지에 시험시 다른 학생의 시험 태도, 부정행위 유무 등을 적어 내야 한다. 제물포고의 무감독 시험은 개교 2년 후인 1956년 1학기에 시작돼 올해로 49년째다.

3학년 14반 반장 여수아(18)군은 "부정행위를 할 경우 친구들의 신뢰를 잃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졸업생 강상수(23)군은 "신입생들은 입학식 때 '무감독 시험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한다"고 밝혔다. 추연화 교장은 "날로 혼탁해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킨다는 사실 하나로도 이 제도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인천.이천=정영진.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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