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한·중·일 수묵화전의 '옥에 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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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일요일 과천 동물원 옆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한.중.일 동양3국의 수묵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특별전이 훌륭하다기에, 또 혹한 중에 만난 따스한 햇살이 반가워 가족나들이 삼아 나섰다.

수묵화에 무슨 남다른 지식이나 안목은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중국 작품에선 대륙의 장쾌한 화풍을 느끼고, 일본 작품에선 섬세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찾아 즐거웠다.한참 눈이 즐거울 무렵 뜻하지 않은 '옥에 티'를 발견했다.

중국 작가중 가장 유명한 저우스충(周思聰)의 작품은 별도의 방을 만들어 전시중이었는데, 명제표(名題標.작가와 제목 등을 적어놓은 딱지)의 글씨가 이상했다.

고원지대 사람들을 그린 '고원풍정도화'라는 작품인데, 작가가 그림에 써놓은 제목은 분명 '도화(圖畵)'인데 미술관측에서 만들어붙인 명제표엔 '원화(圓畵)'로 찍혀있다. '그림 도(圖)'를 '둥글 원(圓)'으로 잘못 쓴 것이다.

나름의 의욕을 가지고 찾아간 기획전이라 "그 정도야…"라는 여유를 갖고 구경을 계속했다.

한국 작가 중 유일하게 독방을 배당받은 작가는 고(故) 이응노 화백. 이번엔 그의 경력을 소개하는 설명문이 눈에 거슬렸다.설명 앞부분에선 정확하게 1904년에 태어났다고 명시해놓았는데, 마지막 문구에선 '89세가 된 1989년에' 숨졌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 화백이 1900년생이란 말인가. 또 다른 '옥에 티'인가.

전시장을 막 벗어날 즈음,신정주씨의 작품 '정'이 눈에 띄었다. 표구를 안하고 스테이플러로 찍어 벽에 붙였기에 이상해 가까이 가서 보니 종이가 아니라 천에 그린 그림이었다. 그런데 명제표엔 '종이, 수묵담채'라고 적혀 있다.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니 "분명히 천을 사용했는데…"라며 말을 흐린다.

중학교 수준의 한자 실력,간단한 암산 능력, 종이와 천을 구분하는 시력만 있으면 누구나 찾아낼 수 있는 실수들이다. 더욱이 국립기관에서 특별히 준비한 기획전이 아닌가. 문외한에겐 이런 사소한 것들이 크게 보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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