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일감 나눠갖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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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해 일본 산업계의 화두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근로자들이 서로 일감을 나눠 갖는 '워크 셰어링'이 될 듯하다.

기업은 감원과 마찬가지인 인건비 삭감효과를 얻고, 직원들은 다소 임금이 깎이더라도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이 제도에 끌리고 있는 것이다.

75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 전기.전자회사들의 산별노조인 전기노조연합은 올해 춘투(春鬪)에서 워크셰어링 실행방안을 사측에 제시할 예정이라고 7일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했다.

또 게이단렌(經團連)과 닛케이렌(日經連)의 통합단체인 일본 경제단체연합회도 활동방침에 '워크셰어링 실시 및 보급'을 명기하고 기업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 단체는 곧 정부 및 노조와 함께 오는 3월까지 구체적인 실행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일본의 노조와 기업은 각기 나름의 이유로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해왔다. 노조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워크셰어링이 임금삭감의 핑계가 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기업은 일감은 제한돼 있는데 근로자만 많으면 서로 걸리적거려 일이 제대로 안되고 책임의식만 떨어진다고 반대했다. 특히 정사원의 수가 줄지 않으면 복리후생비가 그대로 들어가 전체적인 인건비 부담이 줄지 않는다는 지적도 했다.

그러던 노사가 갑자기 의기투합한 것은 대량 실업사태의 대안을 달리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일본의 실업률은 지난해 말 5.5%로 높아진 데다 올해는 6%대로 올라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경기회복 조짐도 아직 나타나지 않아 대량 해고위험이 여전히 노조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실업률 상승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경영실적이 더 나빠질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다.따라서 개별 기업의 경영합리화 차원의 감원도 좋지만 나라 경제 전체를 배려할 필요도 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기노조측은 ▶한달에 하루 정도인 일시 휴가를 최장 1~2년으로 늘리고▶하루 4교대 근무제를 도입하며▶근로자 1인당 근무시간 및 임금을 줄이는 등의 방안을 마련한 상태다.

또 기업들은 워크셰어링 도입과정에서 기업의 실제 인건비는 줄지 않으면서 근로자들의 생산성이나 책임의식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보완책을 연구 중이다.

대기업 중에서는 산요(三洋)전기가 처음으로 오는 4월부터 총 근로시간을 10~20% 줄이는 동시에 임금총액의 인하한도를 정하는 식으로 워크셰어링을 도입키로 했다. 생산공장의 중국 이전으로 국내 일손이 남긴 하지만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 때까지 가급적 감원을 미루겠다는 의지다.

이와 함께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대량 실업사태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 제도에 매달리고 있다. 특히 올해 실업률을 정부 목표선인 평균 5.6%선으로 억제하기 위해 워크셰어링 및 파트타임제의 확산을 재계에 적극 권장하고 있다.

정부가 못하는 사회복지정책의 일부를 그나마 여유가 있는 기업들이 좀 맡아 달라는 것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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