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속뜻 읽기] 9.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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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말(馬)은 기마문화(騎馬文化)의 중심에 있는 동물이다. 옛날의 전투에서 말은 탱크와 같은 역할을 했다. 말은 장수 등 중요한 인물만이 탈 수 있으며, 따라서 말과 장수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간에서는 말을 생산능력과 귀신을 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믿어왔다. 농민들은 말 대신 소를 농사에 이용해왔다. 그럼에도 말을 수호신으로 모시거나, 잡귀를 쫓아낼 수 있는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옛날 말은 귀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제왕이나 장수의 상징이기도 했다.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에서 백마가 알을 수호하고 있었다는 것은 좋은 예다. 한편 옛무덤에서 출토된 말뼈는 죽은 이를 위한 순장용으로도 말이 이용됐음을 보여준다. 역시 지배자와 말이 한 몸이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의마총(義馬塚)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전투에서 한 장수가 죽자, 말이 그 주검을 집까지 물고 온 후에 죽어 말무덤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말과 장수는 바로 한 몸이었음을 보여주는 예다.

말이 지배자,혹은 권세를 상징하는 예는 속담에도 잘 나타난다. '말 꼬리에 붙은 파리가 천리를 간다''말꼬리에 붙은 파리다' 등. 여기서 말은 권력층을, 파리는 그 권력에 붙어 사는 간신배를 비유한다.

말이 화살보다 빨리 달려 죽임을 당한 얘기도 있다. 어느 명마가 활을 쏜 주인을 태우고 화살보다 먼저 과녁에 도착했는데, 화살이 안 보이자 주인이 '엉뚱한 곳으로 왔다'고 착각해 말을 죽인 것이다. 경솔함을 깨우치기 위한 예화라고 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말을 생산 능력을 지닌 존재로 생각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주로 강원도와 서해안 지역에서 전승되어온 민간신앙의 특징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말이 철이나 청자 등으로 구워진 것인데, 대개 한 다리가 부러진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말이 사람들을 괴롭히던 호랑이를 쫓아냈는데 싸움과정에서 다리를 다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과 호랑이가 싸울 경우 호랑이가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호랑이를 죽이거나 쫓아내 버린다.

이는 말이 잡귀를 쫓아낼 수 있는 벽사능력을 갖고 있다고 봤다는 의미다. 말이 마을의 수호신이 된 것도 이런 사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다. 풍요로움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귀신들까지 물리쳐줌으로써 당당한 마을의 수호신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말의 생산기능은 성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적인 능력과는 무관하게 엄청난 크기의 성기 때문에 말은 크고 왕성한 생산력을 갖춘 존재로 간주됐다.

고구려 대무신왕 때 거루라는 말이 도망쳤다가 1백 마리의 말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거루를 신마(神馬)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능력이 탁월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1백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다. 말이 완전한 재생산의 능력을 갖춘 존재로 이해된 것이다.

올해는 말의 해다. 빨리 달리는 말처럼 결과만을 빨리 얻고자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의미를 지닌 풍요로움이 가득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오히려 너무 빨리 달리면 쓸모가 없는 말이라고 해서 폐기처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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