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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따져보기] 한나라 '정치보복금지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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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 보복을 법으로 금지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율사 출신 의원이나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입법에는 위헌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크게 세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무엇이 정치 보복인지 개념이 모호하고, 범죄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면 정치 보복이란 이름으로 덮어둘 수 없으며, 정치 보복인지를 사법부 외의 기관이 판단하는 것은 위헌 요소가 크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입법례가 없다.

한나라당 율사 출신 의원들은 "자칫하면 정치인들의 범죄행위에 면죄부만 주게 된다"거나 "대통령이 '성역없이 수사하라'면 휴지가 될 법안"이라며 부정적 견해였다.

과거 사례도 있다. 1997년 9월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는 ▶정치 보복 금지▶친인척과 가신의 정치 개입 금지▶지역 차별 금지 등 3금법(禁法)을 만들겠다며 정치보복금지법안을 내놨다.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한 사람들로 정치보복방지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주요 내용.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위헌 요소가 많다"고 반대했다. 부정적 견해가 많아 결국 법률안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3일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정책위의장은 "정치보복금지법을 상반기 중에 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종식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한나라당이 정치보복금지법을 본격 추진한 것은 1년 전부터다. 지난해 초 정대(正大)스님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집권하면 단군 이래 희대의 보복 정치가 난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한 이후다. 李총재는 2000년 4.13 총선 유세차 광주시 등을 방문해 "절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당 정치보복금지법 제정을 위한 특별소위(위원장 金淇春)가 10여차례의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어 만들어 낸 법안은 크게 보면 국민회의의 법률안과 비슷하다.

한나라당은 법률안에서 정치 보복을 소속 정당 및 단체가 다르거나 특정 정당 등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이유로 수사, 세무.금융거래 조사, 금융 지원 중단,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보복 금지 대상은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 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등이다. 국회에 정치보복금지위원회를 두고 위원회는 특별검사를 임명토록 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이 법안을 놓고 열린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은 "막연하고 광범위한 주제로 법 제정이 곤란하며 국회 윤리규정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신 포퓰리즘(인기영합)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반응도 차갑다. "정치 보복 금지란 결국 통치권 차원에서 의지로 해결해야지 법으로 되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이미 우리 당에서 시도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정치보복금지법안이 햇볕을 보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 김기춘 소위 위원장은 "입법화에 노력하다 안되면 대선 공약으로 만들 것"이라며 "정치 보복 금지를 위한 우리 의지가 확고하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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