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소방 공사 분리 발주는 특정업체 배 불릴 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린 자동차 제조사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 업체는 자동차가 설계대로 만들어지도록 전문 분야별로 업체를 선정해 부품을 의뢰하고, 품질과 공정 관리를 담당한다. 또한 각 부품이 조달되면 이를 조립하고 품질검사를 거쳐 시중에 완성차를 내놓는 역할을 책임진다. 소비자에게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 역시 이들의 몫이다.

건설업체도 마찬가지다. 전문 분야별로 우수한 업체를 찾아내 공사를 맡기고 현장에서 조립, 가공을 거쳐 구조물을 완성해낸다. 이 과정에서 인력이나 자재, 장비 등을 조달하고 공정·안전·품질·환경 관리와 관청 인허가 업무 등을 담당한다. 공사 완공을 보장하고, 하자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책임진다. 아무 역할 없이 중간에서 단지 이윤만 챙기는 게 아니란 얘기다. 비용 측면을 봐도 분리 발주는 비합리적이다. 해당 분야 사업자에겐 좋을지 몰라도 발주자나 소비자로선 불리한 제도다.

현장 관리의 문제점도 있다. 건설 현장은 전시(戰時) 군대 조직과 비슷하다. 모든 공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져야 한다. 적기에 자재와 장비가 투입되고, 이에 맞춰 인력이 배치돼야 한다. 뒤 공정에 맞춰 앞 공정이 제시간에 끝나야 한다. 그래야 비용과 시간이 절약되고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다. 현재도 전기 공사나 정보통신 공사 등이 의무적으로 분리 발주되다 보니 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소방시설 공사까지 분리 발주된다면 현장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다. 또한 하자 등에 대한 책임소재 논란도 문제다. 통합 발주는 한 개의 건설업자가 공사 이행과 하자에 대해 일관되게 책임을 진다. 그러나 분리 발주는 세부 공사업자별로 제각각 책임을 지는 구조다. 따라서 품질 확보가 어렵고 준공 후에도 하자 발생의 우려가 크며 책임 소재를 둘러싼 분쟁으로 결국 발주자나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된다.

한편 모든 소방 공사를 분리 발주토록 의무화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계약자유의 원칙’에도 반한다.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발주자의 손발을 묶어서는 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특정사업자의 이해만 대변하는 소방시설 공사 분리 발주 논의는 조속히 중단돼야 한다.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