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파행 여론 살피며 '네탓'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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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23일 예산안 처리가 무산된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 떠넘기면서도 여론의 추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민주당 정세균(丁世均)의원이 법인세 인하(1%)에 대한 반대토론에서 "한나라당이 대선을 의식한 선심성 세금 퍼주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자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항의표시로 퇴장,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개인 발언이 아닌 민주당의 계획된 정치공세"라며 '선(先)민주당 사과.후(後)예산안 처리'방침을 확인했다. 반면 민주당은 "개인의 양심 발언을 놓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며 "사과할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 '네 탓' 공방=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여야 합의사안을 국회에서 제안 설명하는데 반대 의견을 말한다는 게 제 정신이냐"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예산 처리가 늦어지면 거대 야당이 욕먹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집권당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려면 차라리 정권을 내놓으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소수 의견도 보장되는 게 의회 민주주의"라며 사과 요구를 일축했다. 또 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송년회 후 본회의장에 들어온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단 취기(醉氣)가 퇴장으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 전망=여야 모두 여론 악화를 우려하기 때문에 감정싸움은 25일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權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유연하게 넘어갔어야 한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고 언급했고 이재오(李在五)총무도 "민주당에서 성의만 보이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李대변인은 "긴 말 하지 말고 내일 총무회담을 열어 오후에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이상수(李相洙)총무는 "한때 총무 차원의 유감 표명을 검토했지만 당내 반발이 컸다"면서도 자신이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여야 합의가 계속 미뤄지면 (예산안을)26일 직권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여야는 24일 총무 협상을 열기로 합의했다.

◇ 건보 재정 암초=그러나 건강보험 재정 분리 문제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한나라당 權대변인은 "당론이 정해진 만큼 반대하는 김홍신 의원을 바꿔서라도 예산안과 함께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홍신 의원은 "만약 내 소속 상임위를 바꾼다면 상임위와 본회의장에서 드러눕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재오 총무는 "여론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본회의 처리 강행 여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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