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속뜻 읽기] 8. 여 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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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여우라는 동물을 경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을 홀려 간을 빼먹기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 영리하기 때문에 붙잡기가 어려워서 인가. 그것도 아니면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는 영묘한 동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만이 사는 세상에 동물이 사람으로 둔갑해 사람행세를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역을 침범당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여우가 조선을 세울 때 재정지원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온다. 부정적인 동물이 도와주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우는 매우 영특한 동물로 알려져 왔다. 특히 이 동물의 행동이 사람들에게는 해롭다고 생각하여 옛날부터 여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속설들은 '여우가 울면 초상이 난다'에서 '여우가 심하게 울면 줄초상이 난다'까지로 발전하고 있다. 여우가 사람에게 해로운 동물이라는 차원에서 여우의 울음소리가 죽음의 상징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우의 상징은 구미호다. 구미호는 말 그대로 꼬리가 아홉 달렸다고 하는 것이다. 구미호의 개념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본래 상서로운 동물이었다고 한다. 꼬리가 아홉이라는 점은 왕의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도 도하신(稻荷神)으로 자리잡아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미호가 여자로 둔갑하여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로 나타난다.

여우는 단지 사람을 홀려서 괴롭히거나 사람의 간을 빼먹는 존재는 아니다. 그 좋은 예가 여우구슬이다.

여우구슬을 먹으면 사람이 초능력자로 변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예컨대 조선시대의 송시열이나 이황, 그리고 정철에 이르는 인물들도 모두 여우의 구슬을 먹었기 때문에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단순한 존재에서 여우구슬이라는 상상의 영물을 지닌 동물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여우를 일반적인 동물과는 다른 능력의 존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을 알리는 동물로 자리잡은 것도 그런 능력의 다른 표현이다.

신통한 존재로 여겨졌던 이 동물은 조선을 건국할 때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조선 건국의 개국공신 중의 한 사람인 배극렴이 서울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백여우를 만났다. 이 백여우는 여자로 둔갑하여 재물을 훔치는 일을 벌이는데, 그 일로 배극렴이 범인으로 누명을 쓰기도 한다.

나중에 여우를 만나 그 재물을 모두 돌려 받게 된다. 그 여우는 한 나라를 세우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데, 이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백여우는 사람을 괴롭히지만, 모두 조선을 건국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여우가 마련한 자금 때문에 성공했던 것일까. 여하튼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게 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왜 민중은 여우를 등장시켰을까.

여우에 대한 민중적인 인식은 부정적이다.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여우를 등장시킨 것은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역으로 말하자면 고려가 붕괴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에 대해 민중적인 호응이 약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사실 『삼국사기』 등을 보면 백여우가 요사스러운 동물로 표현되고 있다. 고구려의 차대왕이 사냥을 나갔을 때 백여우가 따라오면서 울었다.

무당은 백여우가 요사스러움이 큰 동물이니, 왕의 근신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쓸데없는 말로 현혹한다고 죽여 버렸다. 차대왕은 그 후 왕의 폭정에 항거한 백성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 사회에도 여우같은 사람들이 많다.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하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현재 여우가 멸종위기군에 속해 있는 것을 보면 여우같은 사람도 조만간 멸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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