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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육성 호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독일 본 근교 페터스베르크 산정의 독일 정부 영빈관에서 열렸던 아프가니스탄 정파회의가 지난주 성공리에 폐막했다. 덕분에 베를린 천도(遷都)이후 '라인강변의 한적한 도시'로 되돌아간 본이 모처럼 세계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프레스센터에 등록한 외신기자가 1천2백명을 넘었다. 회의장 아래 쾨니히스빈터(왕의 겨울)라는 작은 강촌은 전세계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이 때문에 몇 안되는 이 마을 호텔들은 관광 비수기에 짭짤한 반짝 특수를 누렸다.

기자가 묵었던 호텔의 손님도 거지반 기자들이었다. 영국 BBC팀도 같은 호텔에 묵었다. 2백년 넘은 고풍스런 3층 건물에 객실이 20여개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깔끔할 수가 없었다.여주인 혼자 손님 받고, 계산하고, 커피 날라주고 다 했지만 구석구석이 먼지 한점 없었다.

당시 이곳 호텔방이 동났던 점을 감안하면 바가지 요금을 받을 법도 했는데 평소처럼 하루 1백20마르크, 50달러 수준으로 저렴했다. 음식도 정갈했다.

독일의 지방을 여행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호텔이다. 아무리 산간오지 시골마을엘 가도 작지만 값싸고 쾌적한 호텔이 있다. 사람들도 친절하다. 짐을 풀고 그곳 향토맥주라도 한잔 마시면 여독이 싹 가신다. 이런 시골호텔 수준이 바로 국력수준이란 생각이 든다.

돈을 받고 손님을 재워주는 기업형 호텔은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을 계기로 영국에 처음 생겼다. 그러나 호텔 하면 으레 연상되는 호화호텔은 1898년 프랑스의 세자르 리츠가 베르사유궁을 본떠 파리에 세운 리츠호텔을 효시로 친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별 6개짜리 호텔이 생긴다고 한다. 워커힐호텔이 내년 말부터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다는 W호텔체인으로 바뀌면서 육성(六星)호텔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앞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이런 초호화 호텔이 아니다.

앞에 예로 든 독일호텔이나 일본의 료칸(旅館)처럼 깨끗하고 손님에게 친절한 소규모 호텔들이 늘어야 한다. 호텔이란 말은 프랑스어 '오텔'(hotel)이 영어식 발음으로 굳어진 것으로,'hospitale'(객실)란 라틴어에서 왔다.

이 말도 'hospitalis'(손님에게 친절한)란 형용사에서 왔으니, 호텔이란 말에 애초부터 친절이란 뜻이 담긴 셈이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시설은 형편없고,낮에 요상한(?)손님까지 받는 불친절한 호텔로는 월드컵을 치를 수 없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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