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유로=1달러’ 시대가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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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란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5개 국가와의 수출입은 우리나라 전체 교역의 2%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이 그리스 위기에 전염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1조 달러의 구제금융은 시장에 잠시 안도감을 불어넣는 데 그쳤다. 앞으로 EU의 강도 높은 재정긴축과 민간 소비 위축이 글로벌 더블딥(이중 침체)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로 인해 이달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은 서울 증시에서 5조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안전 자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국제 금(金)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우리에게 발등의 불은 유로화 가치 급락이다. EU의 허약한 경제 체력이 확인되면서 21일 현재 유로-달러 환율은 1.2486달러를 기록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유로는 1.6달러를 웃돌았다. 원-유로 환율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유로당 2000원을 넘보다가 지금은 1400원대로 곤두박질한 상황이다. 당장 유럽 자금이 환차손에 불안해하고 있다. EU계 자금은 국내에 들어온 전체 외국인 투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2343억 달러에 이른다. 여기에다 한국의 대(對)EU 수출 비중은 12.8%로 미국(10.4%)이나 일본(6%)을 웃돌고 있다. 유로화 가치 급락이 우리 수출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유로화 가치 급락이 좀체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EU 경제가 탈출하기 힘든 구조적인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계 투자은행 UBS는 “유로화가 처음 도입된 1999년 1월의 1.174달러는 물론, 유로 가치가 달러보다 더 낮은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의 유로화 위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EU발(發) 위기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때가 아니다. 서둘러 ‘1유로=1달러’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란 한가한 장담부터 버려야 한다. 기업들도 기술·디자인 등 비(非)가격 경쟁력을 높여 환율 변동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